나의 서재

암자로 가는 길

목향 2009. 1. 11. 14:15

 

암자로 가는 길

 


 마곡사의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보고 나오니, 말사, 암자로 가는 길은 네 갈래로 나 있었다.

(백련암, 은적암, 대원암, 영은암) 어디로 갈까? 잠시 머뭇거리고 있는데 곁에 있던 남편이 은적암 쪽을 가리키며 ‘저기로 가지’ 했다. 그러고 보니 그 길만이 유독 간밤에 내린 눈이 말끔히 치워져있어 어서오라고 반갑게 손짓하는 것 같았다.

 

누가 저렇듯 싸늘한 새벽공기를 가르며 수고를 했을까, 허리춤에 언 손을 녹이며 사각사각 쓸었을 그 정결한 주인공에 마음이 갔다. 또한 찾아오겠다는 약속은 없었을지라도 누군가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릴 듯한 그 정스 러움이 자연스레 발길을 그쪽으로 향하게 했다. 비구니들만 기거한다는 안내도 더욱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

 

그 즘 나는 괜스레 마음이 불안하고 짜증도 잘 냈다. 꼭 그래야 할 일도 사실은 없는데도, 하지만 무언가 표면적으로 보이진 않지만, 풀려지지 않는 마음속의 찌꺼기가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이날 아침에도 출근을 서두르면서 큰애가 한마디 했다.

 

“엄마, 또 왜 그러는데요. 마음을 풀어요.”

 

이러한 나의 환부를 도려낼 처방전이었을까, 남편은 나를 태우고 목적지도 말해 주지 안  은채 차를 몰았다. 내가 남편에게 고마워하는 일 중 하나가 평소에 지나치는듯한 이야기를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 잘 기억해 주는 일이다.

 

수년전 어느 가을날 이곳 마곡사에 들른 적이 있는데 사찰 주변 경관도 좋고 앞마당 나무의 단풍이 황홀할 만큼 아름다워 또 한번 찾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을 기억해 준일이다. 황홀한 단풍을 보지 못할 것은 아쉬움이지만 앙상한 나뭇가지의 서걱거리는 바람 소리, 쓸쓸하고 고적한분위기의 산사도 꽤 괜찮을 듯 자못 마음이 설레 이기도 했다.

 

청주에는 눈발이 없어 일기예보가 빗나간 모양이라고 마음 놓고 나섰는데 조치원을 지나 공주가 가까워지자, 꽤 두꺼운 두께의 눈이 쌓여있다. 간밤에 꽤 많이 온 모양이다. 올겨울 눈경치 한번 못보고 그냥 지나치나 했는데 이렇게라도 볼 수 있어 다행이긴 하지만, 눈길이기에 가야 되는지 되돌려야 되는지 진퇴양란. 그러나 그냥 되돌리기에는 뭔가 허전해 가보는 데까지 가보기로 했는데 결국 목적지까지 간 것이다.  

산모롱이나 비탈길에는 누군가의 수고로 모래가 깔려있어 교통의 원활을 도왔지만 조심 운전하느라 남편은 꽤나 신경을 쓴 모양이다. 옆에 앉은 나도 목 줄기가 당길 정도로 신경을 곤두세운 끝에 예정시간보다 훨씬 늦어 마곡사에 닿았다.

 

신라 선덕여왕 9년에 지장율사가 창건했다는 이 절은 대웅전 , 대웅보전, 영산정을 비롯해서 해탈 문 ,사천왕문 등 한 눈에 보아도 꽤 큰 사찰임을 느끼게 한다.

법당을 그냥 지나치지 못함은 그 누군가에라도 기대고 싶은 나약함 때문일까, 조심스레 옆문으로 들어가 지극한 마음으로 향을 사르고 삼배를 올렸다. 부처님이 보살펴 주실 것인지 세상 잘 못산다고 나무랄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우선 그래야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할 듯해서다. 누구보다도 내가 나를 잘 알 터인데 이 무슨 이기심인지. 누군들 자기 자신은 어느 누구보다 스스로가 잘 알고 있을 듯, 자신을 속일 수야 있겠나 싶다.

 

대웅보전 앞마당 우물에서 이가 시리도록 찬 감로수 한잔 들이키고 백범 김구 선생이 심었다는 수형이 좋은 향나무 한그루 응시하며 비문도 읽어본다. 사람은 갔어도 그의 애국 충정은 향내처럼 풍겨 나와 경건한 경배 심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아니면 나라가 망하는 듯 대통령에 나온 이들은 나를 찍어달라고 아우성들인데, 평가는 남이 하는 것이지 어떻게 내가 잘 났다고 저리들 야단들인가.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이 서로의 당리당략만 고집하지 말고 진정 나라와 국민을 사랑하는 충정어린 김구 선생 같은 분이 요즘 있기나 한지.

 

은적 암으로 오른다. 폭 2m쯤 되는 시멘트 길이다. 그리 경사지지도 않아 편안하게 오를 수 있었다.

쏴아 - 찬바람이 인다. 겨울이라지만, 꽤나 칼칼한 바람이 인다. 몇 번인가 머플러를 고 쳐 매며 으스스한 한기를 감싸지만, 한낮의 밝은 햇살은 나목의 끝가지에 살짝 내려앉아 어느새 엷은 푸름의 빛깔로 봄을 열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앞뒤를 살펴봐도 한 사람도 뵈지 않는다. 너무도 적막하고 호젓한 길이어서일까, 조금은 쓸쓸하고 허전하기도 하지만, 조촐한 즐거움도 맛본다.

쭉쭉 뻗은 굴참나무 사이로 군데군데 푸른 기상의 소나무가 눈꽃을 피운 채 의젓한 기품으로 뽐내고 길옆골짜기 얼음 밑으론 졸졸 산골물이 흐른다. 이따금 차갑고 푸른 하늘에 심  호홉도 한다. 가슴이 후련하다. 장끼 한 마리 푸드덕 홰를 치며 날더니 제 무게 못 이겨 뚝 떨어지는 눈 뭉치가 푸석 소리 내며 부서진다.

약 40분쯤 걸었을까, 산모롱이를 막 돌아서니 저만치 암자의 용마루가 보인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니 낭랑한 여승의 염불 소리가 들린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시종일관 지장보살만 되풀이된다.

지장보살, 육도(六度)의 중생을 제도(濟度) 한다는 보살이 아닌가, 멀리 간, 한 영혼의 천도(薦度)를 저토록 지극정성으로 염불하니, 모르긴 해도 그 영혼은 극락에 안주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음률에 맞춘 듯 일정한 간격에 일정한 고저음이다. 보이진 않았지만 앳된 음성으로 보아 20대의 비구니로 짐작이 되었다. 뽀얀 살결의 갸름한 얼굴, 파르스름하게 빡빡 밀어붙인 두상이 연상되었다.

몇 번인가 법당에 들어가려고 문고리에 손이 갔지만, 열심히 기도하는 그 몰입된 분위기를 깨칠 까, 염불만 따라 암송하며 암자 주변을 맴돌았다.

 

뒤뜰에 가지런히 정돈되어있는 옛 민속품들이 향수를 부르고 파란 플라스틱 통에 잘 분리된 폐품들이 알뜰한 스님의 손길을 느끼게 한다. 비닐하우스의 푸성귀며 주방의 기구 등 소박한 여승의 도량임을 그대로 보여준다. 몇 번이나 암자 주변을 서성이다. 툇마루에 걸터앉아 염불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정말 영혼은 있는 걸까? 내가 죽어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으로 태어나게 될까, 흔히 불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기본적 규범인 5품계 (살생, 간통, 도둑, 거짓 ,과음 ) 만 잘 지켜도 삼악도(지옥, 축생, 아귀) 에는 들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적어도 난 삼악도의 면죄부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산속의 겨울 해는 너무도 짧았다. 얼마를 기다렸지만, 그 정결하고 소박할 듯한 여승의 모습은 끝내 보지 못하고 아쉬움을 지닌 채 그냥 내려오고 있었다.

 

인간 누구에게도 성불 할 수 있는 씨를 지니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성불해서 대 자유의 경지에 오르는 이는 얼마나 될까. 인간적 욕망을 모두 끊은 채 오직 진리를 찾아 염불의 삼매에 빠져있는 저 비구니는 그 높은 경지에 도달 할 수 있을까?

 

믿음 없이 아는 것은 오히려 앎이 번뇌스럽고, 알지 못하고 믿기만 하면 업이나 앙금으로 쌓이고, 믿고 알더라도 행함이 없으면 일체 중생을 제도할 힘이 없다는 즉 신,혜,행 (信慧行)을 구족할 때 깨달음의 길이 열린다는데 …….

 

아직도 망설이다 그 어느 신앙심도 키우지 못하고 그렇다고 평범한 인간적인 삶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이 너무도 작아 보여 자구 짜증과 권태만 쌓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 좀더 자숙하고 덕성을 쌓으며 사랑을 키워, 더불어 사는 구성원으로 내 한 몫을 해야 한다고.’

이 적막한 산사의 염불 소리, 바람소리, 물소리, 묵묵히 앉아있는 산과 들도 그렇게 나에게 가르치고 있는 듯하다.

갈 때보다 한층 가벼운 마음으로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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