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재

김종선 수필집「내 가슴의 별」을 읽고

목향 2009. 1. 11. 14:36

                                <김종선 수필집「내 가슴의 별」을 읽고>

 

 존경하는 김종선 선생님,

선생님의 귀한 선물 참으로 감명 깊게 잘 읽었습니다. 심혈을 기우려 쓰신 글은 숙명적인 삶 자체에서 우러나온 문학사상이며, 교육자로서의 올바른 철학 이었습니다.

 

多福한 가정에서 태어나 최후의 순간까지 망설였지만 존경받을 수 있는 교육자의 길을 꿋꿋이 걸으시고 지금은 名譽退職하신 선생님께 祝賀의 말씀을 드립니다. 천사 같은 마음으로 後學을 양성하시면서 영화나 연극 그리고 여행까지 즐기시는 高邁한 성품은 현대 여성의 본보기라고 생각합니다. 깔끔한 성격, 도덕을 생활화하신 미덥고 아름다운 인품은 현직에 계실 때나 현직을 떠나 계실 때에도 인간다운 情이 넘쳐흐름이 글 곳곳에 배어 있습니다.

 

특히 집안 어른들의 높은 교육이념을 영향 받아 한자, 고사 성어, 속담, 인용어 등이 적절하게 구사되어 독자로 하여금 이해력이 쉽게 되고, 또 놓치고 싶지 않은 내용들이기에 더욱 값있는 글이 되었네요. 물론 교단에 스셨기 때문에 문맥이 부드럽고 부담 없이 읽어 가는데 아주 좋았습니다.

 

김 선생님은 평소에 情이 많으셔서 혹은 너무 자상하시고, 깔끔하셔서 제자들을 돌보시는데 남달랐고 학생과 학부모간의 애로점, 인간미, 가정사 등을 어려울 때 같이 걱정하고 즐거울 때는 함께 즐거워하는 모범 선생님의 표본이셨습니다.

 

가족사진은 화목함의 상징이지요. 부군의 핸섬한(실제 곁에서 보면 굉장히 출중하시고 멋있으실 것 같습니다.) 외모는 3공주님들이 예쁠 수밖에 없네요. 요즈음 흔히들 남아 셋이면 목 메달이요, 공주 셋이면 금메달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김 선생님은 3 공주 덕분에 기회 있을 때마다 비행기는 실컷 타시고 해외여행도 남부러울 정도로 멋지게 다니실 것입니다. 이미 선생님이 다녀오신 여행지에 대해서 저는 간접경험(mental tour)을 잘했습니다. 각 부에 넣은 사진을 보고 평소 좋은 글 소재준비를 해 오셨음이 역력하네요.

저는 김 선생님의 글을 다 읽고 2개의 타이틀에 대해서만 소감을 나열해 보겠습니다.

 

● 내 가슴의 별

 

글 전체의 내용이 지면을 꽉 채우는 듯합니다. 한마디 한마디가 놓치고 싶지 않은 낭만과 추억이 남긴 글입니다. 그 내용들이 바로 아름다운 현 실을 창출해낸 근본이 되기 때문에 말입니다.

별은 누구에게나 希望이요, 榮光이입니다. 김 선생님은 그런 별을 따다가 내 가슴에 품었기에 賢母良 妻가 되고, 賢人도 되고, 詩人도 되며, 훌륭한 隨筆家가도 되었다고 생각 합니다.

별을 통해서 우주의 신비, 자연, 자신의 마음의 삼위일체를 철학 적 사상으로 승화시키셨습니다. 너무 느낌이 좋고 아름답고 멋진 글 이었 습니다.

 

● 어느 날의 출근

 

소크라테스는 ‘結婚을 해도 후회하고, 結婚을 안 해도 후회한다.’고 했 습니다. 조물주가 인간을 창조할 때는 부부관계를 만들고, 자녀도 가지며, 서로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人生이라 것은 제멋에 사는 것이니까 좋다 나쁘다 할 수는 없지만 이왕이면 인간 본래의 삶, 즉 가정과 사회 간 사람과 사람이 서로 어울려 살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김 선생님의 글을 읽고 요사이 젊은 세대들이 맛 벌이도 원인이 있겠지 만 자유로운 삶, 누군가에 의해 얽매이기 싫어하는 사회분위기 때문에 아이를 낳으려고 하지 않는다고 생각 합니다. 그리고 兩家 어른들이 아이 를 돌봐주면 상황은 조금 다르겠지만 지금은 어른들도 그 고통을 기피하 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지요.

 

김 선생님께서 헐레벌떡 뛰어 출근하는 이를 보고 직감적으로 떠올리시는 것을 보니 애들 키우시는데 많은 고생을 하신 것 같습니다. 때문에 자식들 에 대한 사랑이 더 깊었기에 더 착하고, 예쁘게 키우셨습니다. 아침출근 때 2-3살 먹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아빠가 보듬고 가면 아빠 목을 꼭 감고 떨어지기 싫어하는 장면, 엄마는 아이가 울지 않고 아빠 품에 안겨 잘 가 는가를 숨어서 보는 안쓰러운 장면을 볼 때 참으로 느끼는 바가 많았습니 다.

 

저는 딸애가 외손녀를 낳을 때부터 제가 키웠으니까요. 시댁은 경남창원 이라 맡길 수도 없는 형편, 방을 친정 가까운 곳에 얻어 놓고 퇴근해서 집에 와 젖을 먹이고 또 짜서 냉장고에 넣어놓고, 신랑과 함께 자기 집에 갑니다. 또 아침에는 저녁에 모은 젖을 출근하면서 전화하면 제가 버스 타는데 까지 가서 받아왔었습니다. 이제는 외손녀도 7살이 되었어요. 2009년에 유치원가면 2010년에는 초등학교에 가겠지요. 그런 가운데서 도 갓난이 한번 울리지 않고 잘 키웠지요. 그러다가 아파트 분양할 기회 가 생겨 전세금을 빼고 계약을 해야 되는데 그러면 당장 살 집이 없지 않습니까. 처갓집에 들어오라고 하니까 그 결정하는데 3개월에 걸리데요. 사위도 창원에서 서울공대 합격했으니까 동네에서 현수막까지 걸 정도가 되었으니까 부모의 기대나 자신의 자부심도 대단했겠지요. ‘겉보리 서 말 이면 처가살이 안한다.’ 란 말이 있으나 요사이는 實益을 찾기 때문에 그 말의 槪念도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애들은 결혼 3년 만에 전 세금 8천만원으로 현재 6억 원을 호가하는 당당한 넓은 아파트를 구입했 답니다. (장모의 재테크에 전적으로 동의한 덕택이지요.) 지금도 저의 집 에서 방 두 개는 딸애주고, 한 개는 아들, 그리고 한 개는 우리부부가 사 용하고 있답니다. 물론 손녀 어린이집 관리며, 키우는 것을 어른들이 하 고 있지요.

 

海軍生活하면서 자식들에 대한 사랑을 별로 못했습니다. 또 그 때 분위기 로는 지금처럼 자식들에게 오냐오냐 하면서 지극히 가정적이면 진해의 軍事都市의 특성상 모양이나 소문이 좋지 않은, 지금 생각하면 비정상적 인 생활을 했기에 외손녀를 너무나 사랑하고 예뻐하고 있습니다. 또 실제 로 새 생명의 고귀함, 어린이의 순진함, 해맑은 미소, 언어 그리고 모든 행동이 天使 같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3살까지 제가 유아일기를 썼답니 다. 어떻게 보면 너무 극성이지요. 딸애 시댁에서도 처음에는 조금 조심 스럽게 생각하더니 지금은 안심하고, 고맙게 생각하고 비록 멀리 있지만 자기 아들, 며느리, 손녀를 잘 돌보고 있다고 마음으로 은혜를 잊지 않고 있답니다. 또 딸애도 모처럼 시댁에 가면 잘 할뿐만 아니라 떳떳하고요.

 

김 선생님 글 이야기 하다가 제 하소연만 늘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자식을 기르는 經驗이고 우리네 삶의 한 面이라는 차원에서 선생님 의 글에 큰 감명을 받아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 죄송합니다. 가까이 계 시면 차 한 잔이라도 대접하고 싶어요. 이제 2009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시고, 행복하시며, 좋은 글 도 많이 쓰시기를 기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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