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학창시절 / 조경희
나는 이화여전을 1934년에 입학했다. 그 당시 교복은 한복으로 자주· 수박색 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고 학교를 다녔다. 여름에는 모시 적삼를 입었다. 입학하던 해에 지금의 이화여대 본관을 신축했고 덕분에 우리과는 새 건물의 새 교실에서 수업을 하게 되었다. 우리과는 모두 13명이었다. 교과목마다 지정된 강의실이 있어 옮겨가면서 수업을 받았다.
우리가 주로 수업한 교실은 기숙사가 내다보이는 북쪽에 위치한 교실이었다. 책상이 따로따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넓고 큰 탁자가 동에서 서로, 남에서 북쪽으로 길게 놓여 있었다. 각자의 자리는 정해놓지 않았지만 자연히 자기자리가 정해졌다.
그 당시 4개과가 개설되어 있었다. 문과, 가사과, 음악과, 보육과였다. 1945년에 해방이 되었으니깐 우리가 공부할 때는 일제통치 말기에 속한다. 일제 식민지시대였지만 우리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우리말로 강의를 받을 수 있는 때였다. 李熙昇선생은 國語 文法을, 李泰俊선생은 작문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다.
李泰俊 선생님의 첫 강의시간이었다. 선생님은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우리에게 ‘무덤자리’라는 글 제목을 주셨다. 어떻게 써야 될지 상이 잘 잡히지 않았다. 가슴이 답답해 나는 원고지와 연필을 들고 신촌산을 헤매고 다녔다. 한참 돌아다니다가 무덤이 있었던 자리 같이 움푹 패어 있는 곳을 발견했다. 그 옆에 주저앉아서 사람이 죽어서 묻어진 무덤을 생각했다. 새로운 느낌을 가지고 무덤자리의 글을 써나갔다. 본대로 느낀 대로 쓰기 시작했고 나는 원고지 12매를 써서 선생님께 제출했다. 최선을 다해서 쓰긴 했지만 결과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 작문시간에 선생님이 우리가 쓴 원고뭉치를 들고 들어오셔서 제일먼저 내가 쓴 글을 읽으셨다. 나는 너무 놀랐고 부끄럽기까지 해서 책상에다 머리를 숙이며 양손으로 얼굴까지 감쌌다. 그러나 이 일은 나에게 커다란 전환점을 가져다주었다.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에 용기와 자신을 얻어 나를 점점 글쓰는 일에 몰두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 < 고 > 조경희 님과 / 북해도 여행중에 )
文科 課長에는 詩人 金尙鎔 선생님이었다. 김 선생님은 英文學을 가르치셨다. 햄릿과 위싱턴 어빙의 글을 읽고 해석하는 공부였다. 文科課長은 金尙鎔 선생외에 박종홍 선생도 맡으셨다. 박 선생님은 哲學的 人間學이라는 冊을 가지고 가르쳐 주셨다. 그밖에 니가이도 선생과 히다 선생 두일본인이 선생님이 일본문학을 교수하셨다.
이외에 가장 중요한 과목은 《English Literature 》라는 브라운 표지의 두꺼운 영문학을 공부하는 일이었다. 이화에서 유명한 영문학 교수는 Miss 카로 선생님과 Miss Harvard 선생님 이었다. 이 시간에는 주로 영시를 외우는 일이었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하나 하나 일어서서 영시를 외우게 했다.
그 당시 나는 내 이름을 쓰지 않고 별명으로 대신했다. 나의 별명은 두꺼비로 상급생 언니들도 이름을 부르지 않고 늘"두껍아" "두껍아" 하고 불렀다. 나는 두껍이라는 별명이 싫지 않았고 두꺼비 껍데기와 비슷한 잠바까지 구해서 입고 다니기도 했다. 잠바를 입은 여자가 무거운 책을 들고 늘 다니는 곳은 학교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에는 세계문학전집을 비롯해서 프랑스, 러시아 문학책 등이 구비되어 있어서 독서에는 지장이 없었다.
주말에는 기숙사에서 정식 외출을 하는 날이었다. 신촌역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역 에 내 려 외출을 했다. 대개 명치좌라든지 개봉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관람했고 중앙 도서관에도 갔다. 명동에 있는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도 하나의 큰 즐거움이었다. 음악을 들으면서 커피 한잔을 마시는 일은 그 당시 멋이기도 했다.
자랑스런 선후배들도 많았다. 金甲順 언니는 내가 입학할 당시 이미 졸업을 하셨고 4년 선배인 張永淑, 洪福柔, 金貞玉 언니가 있고 1년 위인 전숙희 회장이 있었다. 우리 동기로는 音樂科의 金慈璟·申載德, 家事科에 鄭明勳씨 자당되는 李正淑이가 있었다.
우리는 39년에 졸업을 했다. 그때 일제 말기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자주 저고리와 수박색 저고리는 검정색으로 염색을 해서 입게 하였다. 학교에서는 우리나라 말로 강의하던 것을 일본말로 바꾸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우리나라 말살 정책이 서서히 학원까지 밀려들기 시작했다. 다행히 우리는 새로 지은 교사에서 훌륭한 선생님들을 만나 소신껏 공부할 수 있는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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