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고향의 사찰을 찾아 / 불기2555년 부처님 오신 날

목향 2011. 5. 11. 16:38

 

고향의 사찰을 찾아 / 불기2555년 부처님 오신 날

 

(고산사, 신륵사, 보덕선원)

 

 

 

부처님, 오신 날 사찰 3곳을 방문, 참배하면 가피를 입는다고 했던가?

꼭 그래서는 아니고 모처럼 고향땅을 밟은 김에 그곳에 소재한 사찰을 찾다보니

우연히 3곳이 되었다. 모처럼 고향사찰을 찾아 부처님께 참배하고 유년시절을 떠 올리면서

어머님의 숨결도 느끼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불심이 깊은 것도 아니면서 부처님 오신 날 참배를 드리는 일이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생각도 해 보지만 그래도 이날 만이라도 부처님을 찾아 뵈어야만 마음이 편하니

이 또한 어머님의 지극한 불심 덕분이 아닌가 한다.

아무튼 부처님 앞에 경건한 마음으로 합장하면 지금의 나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니

귀중한 시간이 아닌가.

 

하필이면 비가 내려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아주 다행스럽게도

법요식이나 관불 의식 때는 잠시라도 멈춰 주어서 참 다행 이었다.

 

 

 

 

 

 고산사 법당 (응진전)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

충북 제천시 덕산면 신현리 1653번지

 

위 사진의 모습은 관불식에 참여하고있는 불자들이다.

관불식이란 부처님을 목욕시킨다는 의미로 경전의 전승에 따라 아기부처님의

몸을 씻기는 의식으로 부처님 오신 날 행사의 하나로 행해지고있다.

 

 

 

 

법당에서 삼성각으로 ...

 

 법당에서 바라 본 고경당

 

고경당은 새로 신축되었지만 신축되기전 옛 집 윗방에서 여러번 잠을 잤었다.

어머니 께서는 위로 딸만 내리 다섯을 두게 되니 아들 두기가 소원이 셨는데 지극정성 불심에 귀의 하여 밑으로 아들  둘을 두어 소원성취하셨다.

두 동생,  현재 사회생활 잘 하고 있다.  

 

 

 여러차례 이 사찰을 방문했어도 이렇틋 우람한 송림이 조성되어 있는  모습은

오늘 처음으로 본 것 같아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생기어린 신록의 정취가 온 대지에 어우러 졌는데 우중이라 ...

 

 

고산사 (高山寺,지방유형문화재 제 194호)는 제천시 덕산면 와룡산(臥龍山)에 위치한다.

 이 사찰은 신라 헌강왕때 창건되었고, 고려시대에는 혜소대사가 중창하였으며

조선시대에 이르러 효종 4년(1653) 송계대사가 중수하였다고 전한다.

 

현재 신라와 고려시대에 조성한 유적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사찰에 1920년대에 제작된 중수기가 전하는데 이 기록에 의하면 신라말 고려초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한 것으로 나타난다.

 

고산사 삼성각

 

 

 

 고산사 고경당 <요사채> 옆 뜰에 모자간 인듯 다정하게 한 때를 보내고 ...

 

 

 

 

 

 

 

 

신륵사 극락보전과 삼층석탑

충북 제원군 월악리

 

극락보전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맞배지붕이다.

신라 진평왕 이후 여러 차례의 중창과 중건을 거친 건물로 조선 초에 무학화상이, 명종 때 사명대사가 중수한 것으로 전하고 있다. 내부에는 목조 아미타여래좌상을 모시고 있다.

 

신륵사 삼층석탑

 

신륵사 삼층석탑은 보물 제1296호로 상층부 장식이 잘 남아 있는 고려 초기 석탑으로

기단은 정방형으로 탱주와 우주가 잘 표현되어 있고 3층 탑신이 엊혀져 있는 형태이다.

 

1981년에 탑 전체가 기울어진 까닭으로 해체 복원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3cm에서 5cm에 이르는

흙으로 빚은 소형탑 108개와 2개의 사리함이 발견 되었다고 한다.

 

삼층석탑앞에 관불 할 수있게 아기부처님이 모셔져있기에

쪽박으로 물을 세번 떠서 의식을 치뤘다.

 

관불을 행하면 번뇌가 사라지고 병이 완쾌되며 다음생애

불법을 만나 지혜의 눈을 뜨게 된다고 한다.

 

 

 

 

신륵사 앞 개울

 비가 많이 와서 신륵사 앞 계곡물이 시원스레 흘러간다.

 

 

신륵사 산신각

 

 

신륵사 뜰에 고고히 서있는 주목

살아 천 년 : 죽어천 년  

동생이 신기 한 듯 바라보고 있다.

 

 

신문에도 자주 오르내리는 전 봉은사 주지, 명진스님 친견을 위해 그의 카페회원들이

(700명)  타고 온 버스들이 신륵사 주차장에 꽉 들어 차있다.

 

알고 보니 그 스님이 이곳에서 약 40여분 더 들어가야하는 암자에 머문다고 ...

마침 우리 일행이  신륵사에 도착 했을시는 그들 모두가 암자로  떠난후라 오히려

초 파일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한산했다.

 

 

위 사진은<보덕선암 대웅전>

 

신륵사 참배를 마치고 청주로 돌아오는 36번 국도에 안내판이 보여 즉석에서 의견일치를 보아 

 보덕암에 가 보기로했다.

 

이미 서너차례 다녀 온 곳이긴 하지만 대웅전 뒤 암봉에 오르면

신선인양  신령스런  느낌을 받는 곳으로 각인 되어 있는 곳이다.

또한 10여m 더 내려가면 신기한 동굴에 부처님이 계신데 하필이면

그 시간 비가 억수로 쏟아져  취소 ,몹시  서운했다.

 

월악초등학교 발령, 초년병 선생시절! 그 때는 승용차도 없고 순전히 도보로

동료들과 이곳을 처음으로 찾았을 때의 기억이 되살아 나 잠시 추억에 잠기기도 ...

 

 

보덕암의 경사로를 오르는데 짙은 안개에 시야가 잘 보이지않을 정도

너무 힘이 들어 숨이 차 올라  다시는 못 찾을 것 같은 감회에 젖기도 ...

 

 

 

절인심만 하랴 ! 라는 말이 있듯이 직접 주지 스님이 합장으로  맞아 주었다.

그도  그럴것이 일기 고르지 못한데 힘겹게  찾아 준 것이 많이 고마웠을 것이다.

 

스님이 직접 요사채로 안내 해 주었고 과일, 차 등 대접도 받고...

 이 절에 이름이 올려져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지나다 들린 관광객에 불과한데

 

많이 고마웠다.

 

 

 

보덕선원을 복원 증축 할 때 천일기도 드리는 스님 모습, 법명을 알으켜 주었는데 ...

 

 

보덕선암은 충주에서 단양으로가는 36번 도로 에서 구비구비 충주호를 막 벗어나면서

우측  월악리로 들어가는 도로로 접어들어 조금더 가다보면  

우측으로 약 1km 지점에  자리잡고 있는데  안내판이 보인다.

 

약 300 m 전방까지 승용차로 오를 수 있으나 워낙 좁은 길의 경사로라 운전을 조심해야한다.

내 운전 솜씨로는 가당치도 않고 제부의 운전실력을 믿고 있었지만, 비도 오고 좁은 경사로라

조금은 걱정도 되었었다.

 

 

 

 

안개비에 젖은 풍경소리  뎅그렁, 뎅그렁 !

 

 

 

 

※ 전 문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 五蘊皆空 度一切苦厄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 오온개공 도일체고액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無苦集滅道 無智亦無得 以無所得故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菩提薩埵 依般若波羅蜜多故 心無罣礙 無罣礙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故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다라삼막삼보리

 

故知 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고지 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能除 一切苦 眞實不虛 故說 般若波羅蜜多呪

능제 일체고 진실불허 고설 반야바라밀다주

 

卽說呪曰,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娑婆訶

즉설주왈,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세번)

 

 

 

※ 해 설

 

 

<반야심경>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가장 많이 송독하는 불교 경전이다.

본래 인도의 범어로 전해오던 것이 여러 나라에 퍼지면서 다양하게 전파되었다.

특히 649년에 현장이 황제의 조칙을 받고 종남산 취미궁에서 번역한

<반야바라밀다심경>은 공(空) 사상으로 대표되는 600권의 반야경전을

260자로 요약하여 돈탈 정각의 대도를 설교한 대표적인 경전이 되었다.

 

 

<반야심경>의 원제인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에서

‘마하’는 크다·많다·뛰어나다·초월하다의 뜻이고,

‘반야’는 지혜·깨달음의 뜻이고, ‘바라밀다’는 저 언덕, 곧 열반에 이른다는 뜻이고,

‘심’은 핵심·진수이고, ‘경’은 성인의 가르침이자 피안으로 이르는 길을 뜻하니,

곧 ‘큰 지혜로 열반에 이르는 부처님의 진수의 가르침’이라는 뜻이 된다.

 

따라서 불교의 종지를 깨닫는 지름길은 바로 <반야심경>에 있다고 한다.

반짝거리는 지혜와 총명을 얻어 근심 걱정이나 번뇌 고액이 없는 청정무구한 열락의

경계에 들어가는 길이 바로 260자의 ≪반야심경≫ 경문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