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봄, 문학기행 / 한국수필작가회 (소쇄원, 가사문학관, 죽녹원등)

목향 2011. 5. 22. 11:33

 

봄, 문학기행 / 한국수필작가회

(소쇄원, 가사문학관, 죽녹원등)

 

 

참여한 전 회원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에서 )

 

지난 5월13일 한국수필작가회의 봄 문학기행이 실시되었다.

한 해 두 번 (봄, 가을) 실행되는데 나는 등단 초창기에는 빠짐없이 참여하다,

근년엔 함께하지 못했는데 이번엔 기필코 참여하고픈 생각이 들었다.

이유인즉 서울에서 출발하는 버스가 청주회원들을 위해 청주IC 에 잠시 정차시켜준다는

반가운 소식에 고마웠고, 또한 나이 더 들어가면 가기도 쉽지 않을 것 같은 아쉬움 도 있는데다

 더 큰 이유는 오랜만에 문우들을 만나 같이 여행하면서 관광을 즐기고 친목과 우의를 다지면서 현지의 유적및 문화적 답사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날씨도 쾌청하고 먹을 것도 푸짐하고 관광도 즐기면서 즐겁게 하루를 보냈다.

임원진과 물심으로 협조해 준 광주 문우들에게 심심한 가사를 드린다.

 

 

 

가사문학관 정문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지곡리 319

연중무휴

담양은 우리말과 글을 사용해 우리의 느낌을 표현했던

조선 시대 대표 문학인 가사(歌辭)의 중심지로

송강 정철과 그의 스승 면앙정 송순 등이 오래 머물며 가사문학을 발전시킨 곳이다.

 

 

 

가사문학관 정원의 '피리부는 소년상'

 

 

맛있던 점심 불고기 파티 / 점심은 광주 청소년 수련원 원장님께서 크게 한 턱, 

본회 회장님(광주:장정식 님) 과 개적으로 친분이 두터우신 것 같았다. 

 

 

문우들과 /가사문학관 뜰에서

좌로부터 박원명화.최복희,김영이,김자인,김종선,박영자.김정자

 

 

정철은 : 조선 선조 때의 문신·시인.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으로

벼슬이 좌의정에 이르렀다.

서인파의 투사로서 당쟁의 와중 속에서 몇 차례 파란과 귀양살이를 겪었다.

그는 또한 시인으로서 천재적 자질을 나타내어 많은 걸작 가사를 남겼다.

그의 가사는 종래의 한문투를 벗어나 3·4조의 운율에 의해 자유자재로 우리말을 구사했으며,

그의 호탕하고도 원숙한 시풍은 가사문학의 최고봉이라 일컬어진다.

 

작품에 명종 15년 김성원을 위해 지은 <성산별곡>, 선조 13년 강원도 관찰사로 갔을 때

지은 <관동별곡>, 선조 18년-21년 전라도 창평에 은거했을 때 지은

<사미인곡>·<속미인곡> 등 4편이 있고,

사설시조 <장진주사> 1편과 단가 77수가 <송강가사>에 실려 전함.

그는 가사문학의 대가로 시조의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와 더불어

한국 시가사상 쌍벽으로 일컬어진다.

 

문집으로서 <송강집> <송강별집추록유사(松江別集追錄遺詞)>가 전한다.

특히 <장진주사>는 탐미주의적인 향략 사상이 잘 나타나 있는데,

이것은 술에 대한 찬가라기보다 도가적(道家的)인 체험을 읊은 것으로

조선 유학자로서의 일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의 가사 작품 5편에 나타난

시사(詩思)·구상·정서에 있어 실로 조선 문학의 압권(壓卷)이라 할 만하다.

 

 

 

 

학교때 부터 흥얼거리고 외우고 다녔던 정철의 관동별곡

 

조선 선조 때 정철이 지은 가사.

가사문학의 백미(白眉)를 이루는 작품으로 그의 작품 중에서도 웅장한 것으로 대표적이다.

그가 45살에 강원도 관찰사로 있을 때 관동팔경을 두루 돌아,

그 노정의 아름다운 산수·풍경·풍속 등을 읊은 것이다.

 

<관동별곡 중에서>

강호애 병이 깁퍼 듁님의 누엇더니,

관동 팔백니에 방면을 맛디시니,

어와 셩은이야 가디록 망극하다.

연츄문 드리다라 경회 남문 바라보며,

하직고 믈너나니 옥졀이 알패셧다.

 

 

 

정철 / 문청공연행일기

정철이 임진왜란중인 1593년 명나라에 사신으로가서 기록한 일기

 

사미인곡

조선 선조 때 정철이 지은 가사. 정철이 50세 때 벼슬에서 물러나와 창평(昌平)에 있던

3년 동안에 지은 것. 자신을 이별한 남편을 그리워하는 젊은 여인의 몸에 의탁하여 임금에 대한 그리움을 읊은 것으로 선조에 대한 연군(戀君)의 뜻을 나타냈다.

가사의 첫머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 몸 삼길실 제 님을 조차 삼기시니 한생 연분이며 하날 모랄 일이런가.

나하나 졈어 잇고 님 하나 날 괴시니 이 마암 이 사랑 견졸 대 노여 업다.

평생애 원하요대 한대녜자 하얏더니 늙거야 므사 일로 외오두고 글아난고 … "

 

 

 

조선 후기의 가사

 

정철(鄭澈)·박인로(朴仁老)를 정점으로 하던 가사는 한동안 주춤하였다가

소설문학의 자극을 받아 새로운 장편가사로 널리 창작되었다.

원래 가사는 4·4조의 운문으로 그 표현이 자유롭고 또 낭랑(朗朗) 음송(吟誦)할 만하므로

부녀자들 사이에서도 널리 애송되었다.

 

가사는 잡가와는 달리 양반문학의 성격을 그대로 간직하며 숙종 이후에는 장편으로 변모 창작되었다. 이 시대의 작품은 서사시적인 것이 대부분이며 그 내용은 역사·설교·교훈·기행 등을 표현했다.

묘사가 사실적이며 날카롭고 능란한 것은 실학·소설 등의 영향과 이 시대의 추세였던 것 같다.

 

 

가사문학관 뜰 

 

전시실은 총 3개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제1전시실

담양가사 18편(면앙정가, 성산별곡, 관동별곡등)을 비롯

임금이 문무 4품 이상의 신하에게 내린 사령장인 '교지',

송순이 80세 되던 해인 1572년에 자식들에게 재산을 분배한 기록인 '분재기',

정철이 임진왜란 중인 1593년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기록한 '문청공연행일기',

임금이 하사한 옥과 은으로 만든 술잔, 송강집 목판 등 400년 넘은 고서들이 전시되고 있고

 

제2전시실

백광홍의 '관서별곡', 허난설헌의 '규원가' 등 여인들의 규방가사,

 

제3전시실

임억령의 친필유묵과 시문집 목판,

1755년에 그려진 '소쇄원도',

소쇄원 48경 중 평상바위에서 바둑을 두는 모습을 그린 '상암대기',

김성원의 시문집인 '서하당유고', 고경명이 무등산을 답사한 후 쓴 '유서석록' 등

가사문학권 인물 및 유물등이 전시되어 있다.

 

 

 

 

담양 소쇄원(潭陽 瀟灑園) 대한민국의 명승

지정번호 명승 제40호 (2008년 5월 2일 지정)

소재지 :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지곡리 123 

 

소쇄원(瀟灑園)은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원이다.

조선 중종 때의 학자 양산보(梁山甫)가 기묘사화로 스승인 조광조(趙光祖)가 화를 입자 시골로

은거하러 내려가 지은 별서정원(別墅庭園)으로,

자연미와 구도 면에서 조선시대 정원 중에서도 첫손으로 꼽힌다.

 

1983년 7월 20일에 사적 제304호 지정되었고, 2008년 5월 2일에 명승 제40호로 변경되었다.

당시의 건물은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으나 다시 복원, 중수하여 현재 2동이 남아 있다.

 

 

 

 

소쇄원에서 해설 장면

문화유적지 해설 하시는 분이 나이도 꽤 지긋하신 분인데 해설을 참 잘했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알아듣기 좋게 장장 몇시간 참 수고 많으셨다.

 

 

 

 

 

 

 

'메타스세쿼이아' 가로수길에서  

 

 죽녹원 

 

 

 

참여 전회원 / 죽녹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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