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정 일기

제목 : 2003.12월 24일. 그대 있음에.

목향 2009. 4. 12. 14:43
제목 : 2003.12월 24일. 그대 있음에..

아무런 약속이 없다는 것이
내게는 전혀 새삼스런 일이 아닌데
오히려 주위에서 외로움을 두려워하며 걱정해 준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일을 마친 후 안개속을 헤치고 돌아온 집은 온기가 부족했다.

길이 밀릴 것을 대비해 서둘러 방송국으로 향했던 까닭에
끼니를 제대로 채우지 못한 채 벌써 다른 하루를 맞게 되었다.

내용물에 비해 공간이 너무 넓은 냉장고.....
냉장고를 열었다가 그냥 닫고 말았다.
따뜻한 물 한잔을 마시고
CD 플레이어의 전원을 켰다.
음악이 흘러나와 창밖의 안개와 적절한 조화를 이뤘다.
'게리 무어'의 곡들과 '싼타나' 음악을 들었다.

...........

엄마와 가족들이 모여 함께 만두를 빚던 추억을 떠올렸다.
강원도에서는 김치만두를 만들었었다.
두부의 물기를 짜내고 돼지고기를 갈아 볶아 넣고
김치도 양념을 씻어내지 않은 채 잘게 썰어 물기를 짜낸다음 섞고
숙주나물을 삶아 넣고 갖은 양념을 해 버무리면
기막힌 맛의 만두 소가 만들어졌었다.

만두를 빚으면서 만두 소를 숟가락으로 떠먹는 양이 더 많아
엄마한테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아마 엄마는 우리가 그렇게 퍼먹을 양까지 생각해서
넉넉하게 만두 소를 준비하셨을 것이다.
엄마도 몇개의 만두를 빚으시고는 한 입 떠 넣고는 하셨으니까 말이다.

만두를 빚는 일에는 오빠들도 아버지도 잠시나마 동참을 했었는데
우리집에는 특별한 이벤트가 한가지 있었다.
온 가족의 동의하에 만두 몇개에는 만두 소로 고추가루를
잔뜩 넣는 것이었다.
겉 모양으로는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리고 고추가루로 채워진 만두가
우리 가족중 과연 누구의 국그릇에 들어갈지는
아무도 몰랐다.
재미있으라고 일종의 함정? 또는 폭탄?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어슷어슷 썬 떡과 함께 푹 우려낸 사골국물에 끓여 낸
우리 집만의 떡만두국은 별미였다.
국이 완성되어 온 가족이 밥상에 앉았을 때
우리는 모두 호기심에 입가가 저절로 삐죽거렸고
서로 눈치를 보느라 웃음이 터지기 직전의 긴장상태를 이어갔었다.

아버지의 국그릇에서 들통난 고추가루 만두때문에
집안이 뒤집어져라 웃음보를 터뜨렸던 기억이 있다.
아버지 역시 웃음을 참지 못하시고 즐거워 하셨었다.

물론 고추가루만두는 덜어내고 먹어야 했지만
그 몇개의 별종 만두로 인해 모두가 즐거웠던 어린시절이 있었다.

이스트를 넣어 아랫목에 이불을 뒤집어 씌운 채 하루를 넘겨
부풀어 오른 밀가루 반죽으로 단팥을 넣어 찐빵도 자주 만들어 먹었고
찹쌀 못지도 엄마는 잘 만드셨다.

무엇을 만들었던간에 제일 먼저 아버지가 드셔야 했고
밥상에 앉아서도 아버지가 수저를 드시기 전까지는
음식을 앞에 놓고 기다려야 했으며
아버지가 수저를 놓으실 때까지는 아무도 밥상을 떠날 수 없었다.
여름에 반바지를 입고 밥상앞에 앉았다가는
아버지로부터 호된 꾸중을 들은 후 허벅지를 가리는 옷으로
갈아입은 후에야 다시 밥상앞에 앉을 수 있을만큼
우리 집의 엄격한 규율과 질서가 분명히 있었지만
그 기본과 원칙을 지키며 벌이는 이벤트는
언제나 우리가족을 웃게했고 화목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또 노래로 뭉쳤다......
.........

그 모든 시간들은 지나가버렸다.
이제 엄마는 더 이상 만두도 빚지 않으시고
찐빵도, 찹쌀못지도 만들지 않으신다.
엄마가 그리도 맛나게 담그시는 고들빼기 김치도
이제는 맛을 보기가 어렵다.

엄마는 이제 언니가 빚어다 드리는 만두를 드시고
더러 아버지가 차리는 밥상을 받으시기도 한다.
연세가 드시다보니 미각도 떨어져 예전의 음식맛을 내지 못하고
기력도 쇠해 어린아이처럼 점점 순진해져만 가는 엄마다.
드라마를 보면서도 현실과 드라마의 구분을 못해
"저 사람 저번에 죽었는데 어떻게 살아서 또 나오냐?"고 말해
하나하나 자세하게 설명을 해 드려야야만 하기도 한다.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그런 엄마의 지루하고 느린 말들을 끝까지 모두 다 들어드리고 있는
언니를 볼 때마다, 나는 언니가 존경스럽다고 했었다.
내가 언니의 반만 닮았어도 좋았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아버지는 사회 정치 경제 우주과학 유전공학등에 많은 관심을
보이며 늘 공부를 하시고 글을 쓰시는데
평소에는 엄마와 텔레비젼을 보면서 티격태격(?) 드라마에 대한 설명을
하시는 것외에는 그다지 말씀이 없으신 아버지도
우리를 만나기만 하면 말씀이 많아지신다.
우주과학의 발달과 유전공학의 발전, 전망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드러내시는 거다.
평소에 그런 대화를 나눌 상대에 목말라하셨던 기색이 역력할 정도다.
그리고 그동안 써두셨던 원고를 내보이며 자랑(?)을 하시기도 한다.
아버지의 사진이나 글이 실린 책자를 꺼내 보이시기도 하고
그럴때는 영락없는 초등학교 학생같은 모습을 연상시키신다.
시험성적표 잘 받아온 아이같은 모습으로 자랑스러워하며 말이다.

오늘 내가 안개속에 혼자 있었던 것처럼
부모님도 단 두분이 어깨를 기대고 외롭게 보내셨을 것 같다.
일곱식구가 바글거리며
만두를 빚고 고추가루 만두로 인해 집이 떠나가라 웃음을 터뜨리고
뒤로 넘어가고 뒹굴며 방바닥을 치고 배를 잡고
웃음을 멈추지 못해 눈물까지 흘렸던 그 시절은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게 흘러가고 변해가고 떠나는 것이 이치라지만.....
애써 붙잡고 싶은 것이 있다.
더 이상 만두를 빚지 않으셔도 맛있는 음식을 하지 못하셔도
이제는 절대 자상하지 않으셔도
어린아이 같으셔도
그저 존재한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는 부모님이
떠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저 그대가 이 세상에 있는 것만으로 나는 행복한 사람이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