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정 일기

제목 : 2003. 12월 17일. 옛날 이야기

목향 2009. 4. 12. 14:36

제목 : 2003. 12월 17일. 옛날 이야기

2003년이 지나간다고
많은 사람들이 분주해 보였다.
실은 작년 이맘때도 그랬고, 재작년 이맘때도 그래왔었던 일인데도
마치 언제나 마지막인 것 처럼,
다시는 다음 해가 오지 않을 것처럼,
입학원서 접수 기한을 앞에 둔 수험생들처럼.
무언가 해야할 것만 같고 누구든 만나야 할 것 같고
연락을 꼭 해야하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것처럼.
모두들 조바심을 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사회 전반적인 움직임에 비해
내 생활은 너무나도 평범하다.
특별한 일이란 전혀 일어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이 퇴근을 준비하고 약속장소로 나갈 채비를 할 무렵
나는 방송국으로 출근을 하는,
어제와 비슷한 오늘을 보냈다. 그것은 아마 내일도 변함없을 것이다.

올해는 그나마 보내곤 하던
이메일도, 카드도, 그 어떤 연락수단도 취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저 아주 조용히 일에만 몰두하며 보낼 계획이다.
지난해에도 그랬듯이
아주 고요한 연말이 될 것이다. 내게는 말이다.

내게도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를 앞 둔 즈음에는
해마다 온 가족이 함께 나눴던 아름다운 기억들이 있기는 하다.

방학이 맞아야만 모두 모일 수 있는 우리 5남매는
모두 기타를 쳤고 각자 노래를 잘 부르는 편이었다.
당시 KBS 에서 열리던 프로그램인 '가족 노래자랑'에 나간다고
우리 남매들이 기타를 치며 화음을 맞춰 노래를 부르던 모습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몇몇 장면들과 비슷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할 반짝거리는 장식품도
구하기 힘들었고 꼬마전구란 구경도 할 수 없었다.

우리 가족은 큰 오빠의 지휘아래
각각 트리를 장식할 장식품들을 몇 일동안 만들었었다.
색종이를 오리고 붙이고 체인모양을 만들어 트리에 늘어뜨렸고
솜을 뜯어 눈송이 처럼 군데 군데를 장식했다.

화려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옹색한 모습의 트리였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사랑스럽고 또 자랑스러운 크리스마스 트리였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브를 손꼽이 기다리는 이유는
또 다른 곳에 있었다.
가족들 모두 각각 자신의 처지에 맞는대로 선물을 준비하는 것 때문이었다.
모두들 아무도 선물 내용을 모르도록 극비로 한채
포장을 하느라 분주했고 그 선물이 공개되는 날을 기다리며 설레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한 사람당 한가지씩
선물을 준비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브 밤시간.
우리 가족은 촛불을 켜놓고 모두 모여 앉았다.
트리 밑에 놓인 선물에는 그 자리에서 번호가 매겨졌고
우리 가족은 제비뽑기를 해서 자신이 뽑은 번호와 일치하는
선물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막내였고 어렸기에, 내가 준비한 선물을 뽑은 사람이
가장 운이없는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준비한 선물을 뽑은 사람이 가장 행운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제비뽑기에 어떤 술수도 비리도 없었는데.....
선물들은 제각각 어울리는 사람에게 돌아가곤 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있어야 할 자리에 놓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어졌던 노래들이 있었다.
선물교환이 있고 난 후,
자연스럽게 오빠들은 기타를 쳤고
우리 가족은 화음을 맞춰 노래 부르는 일을 아주 재미있어했다.
평소에는 노래를 부르는 일이 거의 없는 엄마도
그날만은 얼굴을 붉히며 노래를 부르셨다.
물론 박자도 틀리고 가사도 틀렸지만
우리 가족 누구도 엄마의 노래에 행복해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아버지가 너무나도 싫어하셨기 때문에
우리 집엔 그 흔한 '화투' 라는 것이 없었다.
가족 모두 아무도 마시지 못하기때문에 '술'도 없었다.

'화투'대신 우린 윷놀이를 했고 '술'이 없었어도 우린 노래에 취했다.
아주 늦은 밤이 될때까지 화음을 맞춰 부르는 노래는 계속되었었다.
옆집이 소음이라고 느낄까봐 걱정하며
이제 그만하고 자라는 아버지의 제지가 없었다면
아마도 우린 밤새도록 노래해도 행복했을 것 같다.

오빠들이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 해마다 이맘때면
우리 가족은 크리스마스 파티를 이어갔었다.
큰오빠가 결혼을 하고
작은 오빠가 군입대를 하고
막내오빠는 유학을 가고 언니는 취직을 하고
우리 남매들 각자의 인생이 다른 길로 펼쳐져 가는 그 시절부터
우리들만의 파티는 끝이났고
트리장식과 선물 준비와 제비뽑기도 없어지고 말았다.
이제 온 가족이 함께하는 어린시절은 지나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모두 지나가게 마련이었다.
나를 제외한 식구들에게는
또 각각의 가정이 생겼다.

19살에 시집오셨다는 엄마가  우리의 기타반주에 맞춰
수줍은 얼굴로 노래부르시던 그 때
엄마는 지금의 내 나이 쯤 이셨을 것이다.
벌써 그렇게 지나가고 말았다.

요즘도 엄마는 아버지가 너무 좋다며
다시 태어나도 아버지와 결혼하시겠다고
말씀하시며 수줍어 하시고
아버지는 엄마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다며
만약 엄마가 먼저 돌아가신다면 당신도 따라 죽겠다는 말씀으로
엄마와 아버지는 두 손을 꼭 잡고 놓지를 않으신다.
내 건강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 졸이지 마시고
두분이 오래도록 그리만 사셨으면 좋겠다.

나는 아마도 그 시절보다 멋진 크리스마스와 연말은
기억해내지 못할 것이다.
여럿이 함께했던 시간보다
혼자 보낸 시간이 더 많은 내게는
그때가 더없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일 수 밖에 없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올해도 혼자인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