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정 일기

제목 : 2004. 1월 1일. 딱다구리

목향 2009. 4. 21. 14:06

제목 : 2004. 1월 1일. 딱다구리

날을 새고
새해를 맞고
조간신문을 읽고
아침이 밝아와  또 아침 약을 먹고
아무도 없는 넓은 집에 어색해하며
잠깐 자리에 누웠다.

어떤이는 떡국을 먹고 있겠지.....

언니의 싱그러움이 존재하지않으니 공간은 광장같았다.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깜박 들었던 잠.
나는 꿈속에서 저 높은 곳에서 내는 목소리를 들었다.
분명 이세상 사람의 것이 아닌 환상적 울림으로
아직도 내 귀와 마음에 문신처럼 새겨진 목소리....
나를 깨우는 목소리.....
나는 그 신내림같은 목소리에 벌떡 일어나
그때부터 동동거렸다.
무슨 뜻일까........

시나브로
내게 아주 소중한 것이 떠나고 있다는 육감에 의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가만히 보낼 수는 없는 것이었다.

급히 전화기를 들고 열심히 번호를 눌러댔다........

아버지와 엄마 언니 조카 차례로 전화를 바꿔가며
안부를 묻고 새해인사를 했다.

생방송이 아니었으면
금세라도 달려가 버렸을 것 같았다.........

홀로 선 겨울나무였던 나는
이제 딱다구리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딱다구리처럼 조급한 내 모습이 나도 싫었다.

어쩌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거나, 않을지도 몰라........

비가 내리거나
어느곳에서는 눈으로 내리거나
지금 도로위를 적시고 있는 것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같은 것인데......

모두들 잠들어 있을 새벽.
이 새벽의 비처럼 내 마음은 계속 내릴텐데.....
어떤이는 비가 내린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엄마한테 섭섭함을 드러낸 것도 몹시 마음에 걸린다.

차라리 모른 체 할 것을.....
딱다구리가 되는 것은 정말 싫다.
그러나 버려지고 있는 나는 더욱 싫다.
썩은 나무로 버려지는 것은 견딜 수 없을만큼 싫다.

이토록 쓸모없는 나를
사랑받지 못하는 나를
왜 빨리 데려가지 않느냐고
하늘에 대고 딱딱거렸다.

몹시 피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