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정 일기

제목 : 2004. 1월 29일. 약 속

목향 2009. 4. 21. 14:13

제목 : 2004. 1월 29일. 약 속

내가 진행하는 방송
[길은정의 노래하나 추억 둘] 목요 사랑방 손님으로
이정선(교수)님이 초대되어 오랜만의 만남을 가졌다.

온 국민이 새마을 운동을 해야 할 시기에
방황을 노래했다고 금지.
사람과 사람사이의 언어소통이 잘 안되는
안타까움을 가사로 써 노래했다고
불신풍조 조장이라는 이유로 금지.
음반 방송불가 판정을 받던 시기의 이야기.

해바라기 결성과 해체과정 이야기.
섬소년과 산사람을 만들게 된 이야기.
외로운 사람들이라는 노래를 만들게 된 이야기.

82년 여름, 그의 주도로 이루어졌고
나도 참여했었던 통기타 가수들의 워크 샵 이야기로
추억을 주어담았다.

그는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약속'이라고 답했다.

서로 약속만 잘 지키면 아마 교통사고도 안날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마음을 열며 동감했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들도 당선 전,
깨끗한 정치를 하겠다는 약속,
부패를 청산하겠다는 약속을 지켰다면
대통령의 측근비리니, 수백억대의 비자금이니 하는 말로
배신감을 갖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뭐 이런 거창한 사건들이 아니더라도 약속은 지키라고 하는 것 아니던가.

이따가 전화할게 라고 말해놓고 오지 않는 전화때문에
기다려야하는 시간은 애타고 초조하다.

학교동창이었던 여자친구가 만나자고 해서
나는 부지런히 약속장소로 나가고 있었다.
거의 약속장소인 번잡한 도로에 다다랐을 무렵,
먼저 나를 만나자고 했던 친구에게서 휴대폰이 걸려왔다.
"나~~ 너 만나러 가는 중에 **씨 전화 받았거든?
그래서 나 **씨 만나러 가야되니까 우린 다음에 만나자"
이런 황당한 말에 어이없어하고 한편으론 빼앗긴 시간을
아까워하고 선약을 했던 나보다 애인을 택한 친구에게
배신감을 느끼며 다시 집으로
허망하게 핸들을 돌렸던 쓰라린 기억도 떠올랐다.

돈 빌려갈 때 언제까지 갚으마 철썩같이 믿도록 약속해놓고
연락두절인 사람도 떠올랐다.

저마다 각각의 약속을 제대로 지키고만 살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풍요롭고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오늘 이정선님을 만나
'약속'의 의미를 새삼 깨닫는 중요한 시간을 가진 셈이었다.
그러면서도 한편,
그의 곡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널 수 없는 강'을 생각했다.

사람사이의 약속을 잘 지킨다는 것이 과연 쉬운일일까?
나 자신과의 약속도 지키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사람들 마음은
바람부는 하늘의 구름보다 더 빨리 변해간다.
나만 제자리에 망부석이 되어있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