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정 일기

제목 : 2004. 2월 2일. 떨림

목향 2009. 4. 21. 14:14
제목 : 2004. 2월 2일. 떨림

'길은정과 와이키키 브라더스' 라는 타이틀로 만들어진
음악. 따끈 따끈한 음악 한 곡이 오늘 첫 방송 전파를 탔다.

1984년초에 이미 '소중한 사람'을 발표했고
독집 음반 3장과 베스트 음반까지
방송에서 흘러나온 나의 노래를 듣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닐진데
나는 오늘 왜 이리 떨렸던 것일까.

이번 음악을 들은 어느 음악평론가는 이렇게 말했다.
"어쩌면 이렇게 비상업적으로 음악을 했어?"

그것은 곧, 요즘 주류를 이루는 음악성향과는
반대의 길을 갔다는 말이었다.
돈 못벌겠다는 말도 된다.

그건 어쩌면 제대로 평가한 것인지도 모른다.
애초에 음악으로 돈을 벌겠다는 목적이란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데뷔는 얼떨결에 가수로 했으나
가수로 활동할 수 있었던 기간은 거의 없었다.
나 조차도 예기치 않았던 방송MC와 라디오 DJ의 역할이 주어져
진행자로 지낸 기간이 더 길었다.

에피소드 하나.
심지어는 가요무대라는 프로그램이 신설된지 얼마되지 않아
'산 너머 남촌에는' 이라는 노래를 불러달라는 출연요청에
노래를 불렀던 적이 있었다.
그후, 매주 가요무대에 출연하라는 담당 피디의 주문에 거절을 하고
(내 딴에는 트로트를 부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고 노래부르는 일을
막는 주위사람들의 압력때문에 등등의 이유로...)
그 피디를 만날 때마다 거절을 계속했기에
나중에는 그 피디가 완전히 감정이 상해 나를 보곤 아는 척도 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방송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줄어들었다.
진행하는 프로그램때문에라도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그러다보니 차츰 '가수'라는 이미지보다 'MC, DJ' 라는 이미지가
더 강해져 굳어버리고 말았다.

노래를 제대로 불러 볼 수 있었던 것은
97년11월에 방송되었던 KBS '빅 쇼'- 길은정의 소중한 사람- 에서였다.

록시에서 기타를 메고 노래하는 내 모습을 보고
생경해하며 "어머 길은정이 기타도 쳐?" 하고 놀라는 분도 있을 정도다.

통기타 가수로 출발해서 그 출발점을 벗어났어도 한참을 벗어난 셈이다.

이제 다시 기타를 치며
롹 밴드와 함께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부를 기회가 다가온 것이다.

처음 '소중한 사람'을 만들었을 때는 철모르던 시절,
졸업하면서 인생에서 기념음반 하나 만들면 그것도 재미있겠지 라는
가벼운 생각으로 녹음했었기에 아무런 떨림도 설레임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왜 이리 떨리는 것일까.
겁이 나고 수줍고 부끄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오랫동안 잃었던 '노래하는 사람' '가수'의 이미지를 찾기위해서는
아마도 이 떨림은 계속되어야 할 것 같다.

"난 노래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벌써 죽었을 것 같다"는 내 말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아직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