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여행

통영 마리나 콘도에 머물며(2) /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지

목향 2010. 2. 11. 16:09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지

 

어린시절이었지만 동족상잔의 그 엄청난 6.25 사변을 직접 겪은 세대로 이곳 통영까지 와서 인근의 거제 포로수용소를 견학하지 않을 수없기에 도착 다음날 바로 포로수용소로 향했다.

 

이미 어느 정도는 내용을 알고 있는 터였기에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음에도 직접 대하고 보니 그때의 그 처참했던 상황이 그려지면서 마음의 동요가 일었다. 어떤 명분의 이념이나 사상이 인간의 목숨을 담보로 할 수 있을까? 국민의 목숨보다 더한 것이 왜? 존재되어야 하나? 러시아작가 대 문호 ‘톨스토이’ 도


  “전쟁은 인간이 만든 최대의 비극이라고 .” 했다.


그 말이 아니더라도 헤아릴 수 없는 인명의 사상, 그 엄청난 재산의 손실, 불쌍한 전쟁고아들, 이렇듯 엄청난 피해 만 남기는 전쟁인데 왜 인위적으로 일으키는 것일까? 그러나 이 인간이 만든 비극은 지금도 도처에 일어나고 있다. 나 같은 아무런 힘도 없는 평범한 상식의 국민으론 그저 안타까움뿐이다.

 

 

 

 

*거제도 포로수용소(Geoje POW Camp)는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당시 사로잡은

북한군 포로들을 수용하기 위해 당시로서는 육지와의 교통수단이 배 밖에 없었던 거제도에

1951년부터 (현 거제시) 고현과 수월 등지를 중심으로 설치한 수용소이다. 1983년 12월 20일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99호로 지정되었다.

 

 

 

* 북한군 남침 선봉에섰던 T-34 탱크 모형을 비롯한 포로수용소의 역사적 현장을 보여주고 있었다. 

 

 

*국내 최초 세계최대의 단일 디오라마관 으로 수용소의 배치상황 ,생활상, 폭동현장이 생생하게 재현되어있다.

 

 

 

* 디오라마관 내부:  당시 모든 생활상의  재현된 모습, 너무  엄청난 현장이라 아! 하는 탄성외엔 별 할말이 ...

 

 

* 1950 년 6월월25일 새벽 4시 북한은 기습공격으로 남침을 감행 하였다. 이렇게 엄연한 사실을 남한의 북침이라고 한다니 참!  

 

 

 

* 대동강 철교여 ! 

 

 

* M.P 다리: 헌병 초소가 있어 감시를 했고 , 포로 출입의 주요 관문으로 긴장된 전쟁의 그림자가

휘감고 있는 이곳을 지나면 포로들의 생활을 경험하게 된다고...  

현재론 먼 아득한 옛날을 회상하는듯,  관광객들이 심심찮게 출입하고 있었다.  

 

 

* 관광하는 동생들의 뒷 모습이 보인다.  

 

 

 

* 여자포로들도 남자들과 동일한 수용소 생활을 했다고 하는데  여자들의 생활상은 더욱 마음을 아프게 했다.

 

 

* 포로 귀한및  송환 열차  : 휴전이 되자  송환을 거부한 포로들은 대한민국에서, 북송을 희망하는 자는 북한으로 ...

여기에서<기차> 울려퍼지던 음악이 참 마음에 닿았는데 그 음악을 담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 개       요

 

1950년 11월 27일 유엔군에 의해 거제시 신현읍, 연초면, 남부군 일대의 1,200헥타아르 규모의 수용소가 설치되었고, 1951년 2월부터 포로수용소 업무가 시작되었다. 포로수용소는 60, 70, 80, 90 단위의 숫자가 붙은 구역으로 나뉘었고, 1개의 단위구역(enclose)에는 6,000명을 수용하였다. 각 구역의 하부 구조로 수용동(compound)가 있었고, 전체 수용소는 4개의 구역과 28개의 수용동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중앙 계곡에는 제6구역, 동부 계곡에는 제 7, 8, 9 구역이 설치되었다. 또한 이러한 시설과 규모를 자체 지원할 수 있는 비행장, 항구, 보급창, 발전선박, 병원, 도로, 탐조등을 설치하여 운영하였다.


1951년 6월까지 북한 인민군 포로 15만과 중공군 포로 2만명 등 최대 17만 3천명의 포로를 수용하였고, 그 중에는 여자포로도 300명이 있었다. 그러나 강제징집 등의 이유로 송환을 거부하는 반공 포로와 송환을 원하는 친공포로 간에 유혈사태가 자주 발생하였고, 1952년 5월 7일에는 당시 수용소 소장이었던 도드 준장이 포로들에게 납치되었다가 석방되는 등 냉전시대 이념갈등의 축소판과 같은 양상을 띠고 있었다.


1953년 6월 18일 이승만 대통령의 반공 포로의 일방적인 석방으로 27,389명이 탈출하였고, 친공 포로의 소환과 등 존재의 이유가 없어져서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조인으로 인해 폐쇄되었다.


현재는 잔존건물 일부만 남아서 이곳에 당시 포로들의 생활 상이나 모습, 의복, 무기 등을 전시해 놓고 있으며, 최근 기존의 시설을 확장하여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으로 탈바꿈하여 전쟁의 역사와 산 교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1]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은 1983년 12월 20일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99호로 지정되었고, 야외 캠프와 일부 유적터만 남아 있던 포로수용소 유적지를 확장하여 1999년 유적관을 1차로 개관하였고, 2002년 11월 30일 유적공원을 준공하여 2차로 개관하였으며, 2005년 5월 27일에는 흥남철수작년 기념 조형물을 준공하여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으로 탈바꿈하였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