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재

영혼의 귀향

목향 2011. 3. 22. 13:27
             

영혼의 귀향

 

 

 

 

위 사진 : 충주호의 가을

 

또 한 해가 밝았다.

 

창을 통해 흩날리는 눈발을 바라보며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니 자연스레 지난날이 떠오르고 오늘과 내일을 다시 그려보게 된다. 아마도 새 해 첫날이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

시간을 거슬러 가정과 직장을 오가던 그 고단했던 시절, 하늘 한 번 마음 놓고 쳐다 볼 수 있었던가. 그래도 참 용케도 잘 견디어 불합리에 편승하지 않았고 양심껏 일했기에 그 대가로 지금은 돈 벌지 않아도 밥은 먹을 수 있게 되었고 비오는 날 학교에 우산 한번 가져간 적 없어도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 각자 일터에서 직분에 충실하니 고맙다.

 

그러나 그렇다고 회한과 후해가 왜 없으랴!

우선 그토록 옥죄인 생활에서 오랜 세월 벗어날 수 없었음에 안쓰럽다는 생각이 먼저 고개를 든다. 스스로에게 지나치리만큼 엄격 했기에 놓아주지 못한 점, 그 팍팍하고 팽팽한 긴장감을 쉽게 풀어내지 못한 일등 돌아서 생각하니 참으로 행복이란 잣대에서 많이도 멀어져 있었음에 후회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흘러간 세월, 과거에 이끌리지 말고 그 보상을 위해서라도 앞으론 좀 잘 살아볼 일이다.

공자님 말씀에

 

‘나이 60은 이순(耳順) 이라고 해서 귀로 들어도 거슬릴 것이 없다.’ 라고 했고 70은 종심(從心)이라고 마음가는대로 해도 어긋남이 없다.’

 

라고 했는데 십년을 거꾸로 세어도 아직 난 철들지 못했기에 한 조각 거슬린 말에도 귀를 세우니 아직도 한 참 멀었다. 부족하기에 배워야하고 깨우칠 일이 너무나 많은데 어, 어 하는 사이 어느 새, 내 나이가, 새삼 스러운 일은 아닌데도 화들짝 놀라고 만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남을 충고하는 것이고 가장 어려운 일은 나를 바로 아는 일.’

 

이라했으니 지금 내가 어디쯤에 와 있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깊숙이 들여다볼 일이다.

새롭게 시작한다고 해서 일상을 획기적으로 바꾼다는 얘기는 아니다. 돈을 벌어보겠다거나 나를 드러낸다거나 허울 좋은 자존심에 나를 가둔다거나 그런 객관적 일에서 벗어나 내 마음을 다스린다는 얘기다. 남은 시간은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많이 줄어들었기에 자못 아쉬움도 크지만, 여생이나마 잘 살아서 편한 잠자리에 영원히 눕고 싶다는 얘기다.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

우선 좀 즐겁게 살고자 한다. 긴장의 끈을 풀고 나를 내려놓고 편안하게 살고 싶다. 타인의 삶이 아닌 바로 나로 살고 싶은 거다.

 

‘두뇌가 노력을 못 따라가고 노력이 즐겁게 사는 자를 못 따라 간다.’

는 말도 있듯이 마음을 열어 인간관계를 원만히 하면서 나를 풀어주고 싶다.

 

그러기에 전에는 등 떠밀어도 가지 않을 곳을 내 발로 찾아들어 노래교실 친구들과 박수치고 환호하며 생소했던 얼굴들과 마주하며 웃는다. 늦게 배운 운전으로 가까운 야외 바람도 쏘이고 가고 싶고 보고 싶던 곳을 찾기도 한다. 더러는 영상에 도취해 메마른 정서와 감성에 윤기를 불어넣고 절실한 장면에선 떨림으로 받아드리니 그만한 감성이 아직도 남아있기에 고맙다.

얼마 전 '소피아 로렌 ' 이 주연했던 70년대 영화「해바라기」를 다시감상하면서 얼마나 감동을 받았던지 지금도 그 플랫홈 마지막 장면이 눈에 선하다.

 

다행스럽게도 밥은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체면 구기며 살 필요도 없고 나를 위해서 아니, 남을 위해서도 얼마쯤은 쪼개어 쓸 수 있기에 작으나마 더불어 사는 삶 에 한 몫 끼이고, 더러는 작은 브랜드에 눈길을 주면서 선 듯 물건도 집어 들고 보리라.

또한 방편의 일환으로 내 블로그를 만들어 글을 비롯한 여러 작품의 흔적을 남기고 사이버상으로나마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소통 하니 지루한 시간이 줄어들어 좋다. 아울러 많은 작품을 통해 배우고 감상하며 깨우침을 얻고 우의를 다져 끈끈한 정을 주고 받기도하니  일석이조(一石二鳥)인 셈이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소통의 문을 열어 얼마나 큰 힘과 용기를 주는 지는 모두가 공감하는 얘기다.

 

부처님 말씀에 3불이라는 경고메시지가 있다.

 

‘ 탐욕하지 말고, 어리석지 말며, 성내지 말라.’

 

이 셋 중에 내게 가장 해당되는 말은‘성내지 말라.’이다. 잘 참지 못하고 직설적인 면이 있으며 조금은 괴팍한 성격임을 스스로 인정하니 좀 더 너그럽고 참는 힘을 길러 더불어 사는 일에 비중을 두고자 한다.

 어차피 혼자 살 수는 없는 일, 외롭지 않으려면 우선 나를 사랑해야 남을 사랑할 수 있음을 실천할 일이다. 인생은 곧 만남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제 무엇을 남길 것인가?

이 대목에서 왠지 나도 모르게 마음이 짠하고 숙연해 진다. 마치 죽음을 목전에 두고 유언장을 남기는 듯하다. 아니 실제 유언장일 수도 있겠고 어쩌면 나의 백서가 될 수도 있겠다. 우선 적지만 재산목록을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실제 재산 목록이란 말을 붙일 수도 없지만…….

 

나는 현재 세 딸과 외동 손자를 두고 있다.

실제로 번 재산이라면 서울 집값의 몇 분의 1인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 한 채 뿐이지만, 물려받은 토지가 좀 있기에 아주 조금씩이나마 고루 등분할 생각이다.

큰애에게는 손자의 몫으로 한 몫 더 얹어 주고 싶다. 이 세상 누구보다도 그 아이를 내가 제일 사랑하기 때문이다. 남기는 재물이 너무 적어 미안하지만, 이루면서 살아내는 것도 쏠쏠한 즐거움이고 재미임을 알고 욕심 없이 분수껏 살아 금전으로 인한 속앓이는 절대 없었으면 한다. 그런 면에서는 꼭 엄마를 닮았으면 좋겠다.

 

다음은 정신적 유산이 되겠다. 이미 위에서 내 생활신조가 속속 드러났듯이 더 부침 말이 필요 없겠지만, 이외 남길 가훈이라면 정직성을 강조하고 싶다. 이 말 역시 귀에 딱지가 붙을 정도지만, 한 번 더 힘주어 강조한다. 평생을 잘 살려면 거짓 없음이라고.

 

현재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하고 싶은 일이나 취미를 찾아 올인 하는 과정에서 성취욕과 즐거움을 맛보며 나만이 아닌 더불어 사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행복한 삶이 아닐까한다. 이외 겪는 외로움이나 고독은 누구에게나 따라다니는 그림자 같은 형상이니 ‘인생은 역시 고해.’ 란 말을 상기하고 위로 받으면서 편안한 마음을 갖도록 노력하기 바란다.

 

사랑하는 딸들아, 그리고 형제자매들, 너희들이 있기에 내가 존재 된단다. 지금에 서로 얼굴을 볼 수 있고 말을 건넬 수 있으며 숨 쉬고 있는 이 자체만으로도 참 많이 행복하다. 이 소중한 시간들을 서로 보듬고 귀하게 여기며 알뜰하게 보내자꾸나.

 

이제 어떻게 죽을 것인가?

언제 어떻게 저 먼 나라로 가게 될 지는 가늠 할 수도 추측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생자필멸 (生者必滅) 꼭 오고야만다.

그러기에 삶의 연장선으로 내다보고 그 어느 날 부르면 담담한 마음으로 따라갈 준비는 하고 있어야 될 것으로 본다. 그간 몸과 마음을 잘 다스리고 주변을 깨끗이 정리하며 용서하고 용서 받는 화해의 장도 마련해 마음 편하게 보낼 일이다.

 

이 모든 것에 앞서 정말 기구하고 싶은 것은 너무 오래 아프지 말고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삶인지 죽음인지도 모를 병석에서 주렁주렁 생명줄을 달고 목숨만 부지한다면 생각만으로도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린다.

‘최윤희’ 씨의 죽음 뒤에 참 말도 많았다. 결코 자살을 찬미하고 옹호해서가 아니라 나는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죽음의 장소를 남의 모텔로 정한 것은 부당하지만 그의 유서에서처럼 칠백 가지의 극한 통증에 시달린다면 살아있다 한들 그게 바로 죽음보다 더한 고통인 것이다. 오죽하면 사랑하는 피 붙이를 남기고 건강한 남편까지 데리고 저승길을 택했을까.

그러기에 갑론을박으로 회자되는 안락사문제는 빠른 해결로 법제화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회생의 기미가 전혀 없다면 편히 보내드리는 것이 효도 일듯하다.

 

큰 애를 분만 할 때의 일이다. 늦은 나이에 초산이라 그 통증 말로 표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극심했다.

그 때 분만실 창문을 통해 커다란 앞산이 눈에 들어 왔다. 순간적으로 떠올려진 생각 저 산만큼 돈이 쌓여 있다 해도 이 고통과는 비교 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스쳤다. 그 산 만큼 많은 금전을 준다 해도 결코 겪지 않을 고통이었다.

 

어떻게 영면 할 것인가?

친정에도 시댁에도 선산이 있다. 간절하고 솔직한 심정은 고향땅 어머니 발치에 묻히고 싶지만 그것은 아이들이나 남편(?)이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죽어서까지 자식들 심기를 건들이고 싶지 않기에 뒤처리는 남은 자의 몫으로 남기려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깨끗이 태워 푸른 나무 밑에 뿌리던지 아니면 고성이씨 선산에 납골로 남겨 달라는 말을 남기고 싶다.

 

납골로 남긴다면 작은 돌에 ‘자연스럽게 살다 자연으로 돌아가다.’ 란 푯말을 하나 세워주었으면 좋겠다. 쑥대밭이 되지 않게 깨끗이 주변 정리를 해 주었으면 더욱 좋겠지만 요즘 세상 너희들에게 부담이 될듯하니 알아서 할 일이다. 그러나 그 일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고 자손이 있다는 증표이기에 바로 너희들을 위하는 일임을 알았으면 한다.

 

써 놓고 보니 정말 유언장이 되었다.

아무튼 아름다운 마무리는 아름답게 여생을 보내는 일이다.

남은 날 잘 살아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귀향하여 편안한 잠자리에 영원히 잠들고 싶다.

 

 

 

 

한국문인협회' 발행 <계절문학> 2011 년, <봄> 호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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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해바라기' 주제곡 Loss Of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