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재

추억의 거리

목향 2008. 11. 25. 16:30

추억의 거리

                                                                                                                      목향    (김종선 )


제천 역 플랫 홈에 발을 디디니 마음이 울컥 눈물이 핑 돈다.

한창나이에 한때를 보냈던 이 고장을 너무도 오랜만에 찾아드니 형언키 어려운 감정의 소용돌이를 주체 할 수없기 때문인가 보다.  

내가 태어나 유년을 보낸 실제 고향이 아늑하고 따스한 어머니의 품속처럼 그리운 고장이라면 외롭고 우울 하고 고뇌하고 방황하고 그리고 더러는 기쁘고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들로 점철 되었던 이 곳, 제천은 또 하나의 고향이기도 하다.

지금도 생생히 가슴속에 자리 잡은 얼굴들, 눈을 감으면 더욱 또렷이 살아나는 얼굴들, 그들과의 만남이 있었던 곳이기에 지워질 수 없는 곳이다.  

항상 분주한 나날이었다. 집을 나서 2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이곳을 항상 마음속 상상의 나래로만 펼 뿐 실제로 찾지를 못하고 수십 년을 보냈다.

어쩌면 바쁘다는 건 핑계인지도 모른다. 실제 두려운 것은 그때의 주인공들이 사라져 간 거리에 혼자서고 싶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겨울 어느 날 모처럼 한가한 시간도 나고 추억의 잔영이라도 만나고 싶은 잔잔한 파문이 일어 용기를 냈다. 자못 설레 인 가슴을 안고, 긴 줄 달린 작은 백하나 둘러메고 간편한 옷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전형적인 겨울 날씨, 싸한 냉기가 옷깃을 여미게 한다.  

시내를 벗어나니 정하리 종축장, 야트막한 동산의 초지는 언제나 동심의 꿈같은 정경을 보여주는 곳, 이어 오근장 작은 역사를 대하니 정겨웠다. 탁 트인 시야를 보니  청량음료를 마신 듯 시원하다.

“제천행 표 한 장 주세요.”

마주본 그 역원의 얼굴, 젊은 날 자주 대하던 그 역원 , 키 크고 눈 꼬리 길게 올라간 우락부락 하게 생긴 바로 그 얼굴, 아니 그때가 언젠데 그를 여기서 만나다니, 그냥 반갑고 신기했다. 그가 나를 알아 볼 리 없지만 아는 체 인사를 했다.

 

“어머,  오래계시네요. 안녕하세요?”

 

그는 한마디로 ‘예’ 하더니 그냥 씩 웃는 것으로 답한다.  

기차를 타 본 것이 얼마만인가, 시골 초등학생이 생전 처음 기차를 타 본 듯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편 할 듯한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차내 온기가 알맞고 무엇보다 한산해서 좋았다. 그러나 음성에 차가 닿자 꽤 많은 사람들이 올랐고 내 앞으로 어떤 청년이 나타나 차표를 코앞에 내미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제야 지정된 자리가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민망해서 급히 일어났다.

 

옛날, 나무의자에 비좁게 앉아 이글이글 타오르던 조개탄 난로 불에 의지하던 그때의 정경이 잠시 스쳐 격세지감이다.

충주를 지나 삼탄을 지난다. 울울창창 여름이면 물놀이를 자주 오던 곳이다. 개헤엄이라도 한참 치고 나면 시장기에 옹기종기모여 앉아 닭다리 뜯던 생각도 났다.

이래저래 생각의 꼬리를 물다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닿았다.

 

우르르 쏟아져 나가는 사람들, 출구를 향해 모두들 바쁘다. 예나 지금이나 참 제천 역은 시끄럽고 복잡하다. 제천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 바로 교통의 요지여서인가보다. 새 갈래로 갈라지는 분기점이니 그렇기도 하겠다.

나는 마지막 길손으로 프랫홈에 한참이나 그냥 서 있었다.

 

매점으로 눈이 간다. 여전히 펄펄 끓는 우동국물이 김을 뿜어낸다. 서둘다 아침을 먹지 않아서인지 시장기에 구미가 돈다. 그래. 오늘은 맘 놓고 먹어보자. 지난날 역전근처의 학교에서 근무했기에 혹여 학부형이라도 만날까, 그 알량한 체면 때문에 군침만 삼키며 돌아선 것이 부지기수다. 이제 사 누가 나를 알아보랴. 마음 편하게 한 그릇 먹는다.

이제 어디로 갈까, 개찰구를 빠져나온다.

 

우선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N 초등학교로 발길을 돌린다. 운동장 여기저기 눈 더미가 쌓여있는데도 축구부 선수들의 훈련이 한창이다. 내가 재직할 때 도, 도 지정 종목으로 지정되어 맹훈련을 했었는데, 경기에 지고 이김이 살고 죽는 목숨이 걸리기라도 한 듯 사력을 다해 목이 터져라 응원하던 젊은 날의 내 모습이 운동장 푸라다나스 밑으로 보인다.

교사 주변을 한 바퀴 돈다. 전에 없던 아주 커다란 강당이 서편으로 깨끗하게 신축되어있다.

 

교무실 문을 노크한다. 머쓱한 두 얼굴과 마주친다. 컴퓨터 앞에 앉았던 한 선생이 의아해 하면서 손을 내민다. 나 역시 본 듯한 얼굴 알고 보니 한해 선배다.

 

그래도 손님이라고 그 선배가 커피 한잔을 권한다. 이것저것 어설프게 몇 마디 나누다 학생 현황 판에 눈이 멎었다. 세월이 많이 흐르긴 했지만 그래도 도심지 학구인데 학생수가 반으로 줄다니, 언 듯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동 시켜 줄 테니 놀다 점심먹고 가라는 선배의 치레적인, 인사를 뒤로하고 그때의 얼굴들을 그리며 교문을 나섰다.

 

발길은 자연스럽게 옛 하숙집으로 옮아진다. 정확히 말하면 가정교사로 있으며 숙식을 제공 받던 집이다. 그 집으로 가는 길목에 굴다리가 놓여 있는데 그 굴다리에서 잠시 회상에 잠긴다. 한때나마 버팀목이 되어주던 S, 그는 지금 어느 하늘 아래 어떻게 살고 있을까, 헤어지던 날, 그가 탄 기차가 저 산모롱이를 지날 때 꽤나 마음 아팠던 기억이 난다. 지금이야 아주 까맣게 지워진 얼굴이지만,

 

하숙집은 찾을 수없었다. 주위 환경도 많이 바뀌었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물어보아도 도대체 안다는 사람을 찾을 수없다. 발길을 돌리며

‘나는 참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구나.’ 그 자모가 나한테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잘해 주었는데, 독감이 걸려 며칠을 고생할 때, 손수 한약을 지어다 정성으로 달여 주던 그 손길을 아주 잊고 있었다니, 좀더 일찍 찾아왔어야 했는데 후회가 되었다. 그때 내가 가르쳤던 그 아이도 벌써 나이 사십대 일 텐데, 두뇌 좋고 공부도 잘 했지만 언어가 비정상적이었는데 결혼은 잘 했는지?’

 

그때는 참 많이 아팠었다. 무슨 병이 있는 것은 아닌데 그냥 몸살처럼 자꾸 아파 아이들한테도 꽤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몸의 병이 아니라 마음의 병일 듯하다.

아주 작은 일도 왜 그리 고민스러웠던지, 지금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절대 그렇게는 살지 않을 것 같다. 참 어리석은 공상이다.

 

세 번째로 들른 곳은 격의 없이 가깝게 지내던 막역한 동료교사, 선이의 집이다. 내 집처럼 드나들며 잠자고 밥도 먹던 집이다. 그가 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터이지만, 풍문에 그의 자매들이 그 집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옛 그 집터엔 2층 양옥이 들어서있었지만 그의 가족은 살지 않았다.

 

그 누구의 근황조차 듣지 못하고 되돌아서니 몹시 섭섭했다. 날씨도 마음도 쓸쓸하고 황량하다. 그냥 울먹한 심정으로 휘적휘적 거리를 헤맸다.

겨울의 짧은 해는 벌써 서산을 넘는다. 귀로의 역사로 향하던 발걸음은 음식점 국밥이란 메뉴에 끌려들어 섰다. 설렁탕, 육개장, 해장국이 다 국밥일진데 유독 국밥이란 말에 정을 느낀다.

 

두루뭉술한 내 또래의 아줌마가 반갑게 맞는다. 손님은 없지만, 후끈한 난로 열기에 언 몸을 녹인다. 사람이 별로 없어서인지 자꾸 내게 말을 건넨다. 굵은 손마디며 투박한 말씨, 몸에 베인 듯한 주모의 풍모로 보아 세상 만고풍상은 다 겪은 듯 넉넉하다.

음식점 문을 나서니 시간이 꽤 된 듯 여기 저기 상점의 불빛이 쏟아져 나와 역 광장을 대 낮처럼 밝힌다. 이제 아침에 온 길을 거꾸로 간다. 낮 기차가 아닌 밤 기차를 타고 이곳을 또 언제 찾을 지도 모를 기약 없는 약속을 주며 손을 저었다. 기차는 언제 타도 마음을 아늑하게 하고 생각을 깊게 한다.

 

“그래. 산다는 것은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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