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재

혼자 가는길

목향 2008. 11. 25. 16:24

                                                 혼자 가는 길

                                                                                                                                                                 김종선(목향)

 같은 색깔 ,같은 크기의 봉긋한 옷을 입고 무수한 주검 들이 사방에 누워있다. 실제 성인의 키 만큼도 안 되는 초라한 봉분 그에 걸 맞는 작은 비석하나, 그 옆으론 하나같이 울긋불긋한 한 줌의 조화(造花)가 그들의 영혼을 위로한다.
그러나 생명이 없는 이 꽃은 조화(弔花) 로서의 구실을 못할 듯하니 차라리 없었으면 좋을 듯 싶다.

 애들 아빠와 함께 속리산 법주사에 다녀오던 길이다. 늘 상 다니든 길로 접어드는 가 했더니 한 마디의 언질도 없이 갑자기 핸들을 우측으로 꺾는다. 내가 왜냐고? 물어볼 사이도 없이 나타난 장면, 그곳이 바로 말로만 들어오던 '가덕리 공원묘지’란다.
언젠가 내가 이곳에 한 번 와 보고 싶다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남편은 그 말을 기억해 지나는 길에 나를 이곳에 데려온 것이다.

 삶과 죽음이 종이한 장의 차이 련가! 조금 전 까지는 산 사람들의 북적임 속에 자연을 감상하고 삶을 얘기했는데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이곳은 더없이 적막에 쌓여 생의 덧없음을 무언으로 말해주고 있다.
저녁어스름 인데다 잿빛 구름이 내려앉아 사위는 더욱 무겁고 칙칙한데 조으는 듯 깜박거리는 외등의 불빛 조차 외롭게 느껴진다.

 차에서 내려 사방을 둘러본다. 마음 저 밑바닥에 황량한 바람이 스친다. 허전하고 쓸쓸하다. 문득 어느 성직자들의 묘비에 새겨져있다는 글귀가 떠오른다.

‘오늘은 내 차례 내일은 네 차례.’

 끊임없는 생성과 소멸의 되풀이, 누가 이 삶과 죽음의 문제를 극명하게 파 헤칠 수 있을까? 수 많은 종교인, 철인, 예언자들이 저마다 목청 높여 부르짖고 있지만, 아직 까진 확실하고 시원하게 풀지 못하는 불가사의한 수수께끼다. 아니 어쩌면 영원히 정답을 내릴 수 없는 지상 최대의 과제인지도 모른다.

 어둠 속에 흐려진 희뿌연 공간으로 빤한 불빛을 발하면서 승용차 한대가 서서히 다가 오더니 이내 젊은 여인이 혼자 내린다. 저만치 제3지구 쪽으로 올라가는가 싶더니 어느 묘비 앞에 무릎을 꿇는다. 효도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여식이 그 한을 풀지 못해 속죄의 눈물이라도 뿌리러온 걸까? 아니면 새끼손가락 마주 걸며 언약한 지순한 사랑의 꽃을 피우지 못 해 그리워 찾아 온 걸까? 그의 등 뒤로 애절함이 흐른다.

 이 여인의 뒷모습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고향의 어머니묘소가 나타난다. 나 역시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 조아리며 어머니!  가만히 불러본다. 아릿한 마음에 눈물이 고인다.

 아직까지 어머님 산소에 비석 하나 세우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길을 오가며 잘 다듬어진 남의 묘소를 눈여겨보다 보면 더욱 마음이 급해지고, 먼 길 떠나기 전에 꼭해야 할 우선 순위라고 굳히면서도 아직까지 실현을 못해 개운치 않다. 

 형제들이 모이는 날엔 의논을 해보지만, 여럿이다 보니 의견도 분분하다. 납골로 할 것인지 좀 멀리 있는 조상도 한데 합칠 것인지, 결정이 쉽지 않고 또한 가장 키를 쥐고 있는 남동생이 너무 바쁘다보니 급할 것 없다는 핑계 아닌 핑계를 둘러대며 한해 두해 자꾸 밀려지고 있다. 금년에는 구체적으로 의논이 있어야 되겠다.

 이리저리 묘지를 둘러보며 서성이다 차에 올랐다. 작은 모롱이 하나 돌아드니 마을 어귀가 보였고 제일 가깝게 ‘어린이집’ 이란 간판이 눈에 띄었다. ‘맹모삼천지교’ 의 예까지 들지 않더라도 귀여운 재롱둥이들의 요람이 여기에 있다는 것은 참 어울리지 않을 성싶다.

 하늘을 쳐다보았다. 희끄무레한 분위기 탓일까, 어느 비명 객사한 영혼이 한이 서려 저승에 들지 못하고 원혼이 되어 구만리장천을 떠돌고 있지나 않을까, 생각이여기에 이르니 조금 두려운 생각이 든다.

 “여보, 이동네 사람들은 무섭지 않을까?”

 옆 자리의 남편에게 뚱딴지같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그래서인지 그는 아무런 말이 없다.
죽음 같은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늘 영원히 살 것만 같은 착각 속에 너무 바쁘게 사는 그의 의중을 듣고 싶었지만, 그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어쩌면 그 침묵의 또 다른 언어는 죽음의 긍정성을 깊숙이 내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생이 다하면 컴컴한 침묵의 집으로 들어가 아주 오래오래 깨어나지 못할 잠을 잘 터인데, 여기에 생각이 이르니 어느새 마음은 안온해진다.

 마지막 가는 길에 순서가 없다. 당장 네일 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아직 나는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고 있다. 이제 나이가 있으니 삶도 죽음도 정리하고 매듭을 지어야 함에도 어떠한 모습으로 영면할까도 깊숙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냥 한 줌 재로 흩뿌려지고 싶다고 넌  지시 이야기할라치면 아이들은 그건 저희들의 몫이니 넘겨달란다.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좋다니.’ 아마도 두려움에 조금이라도 더 멀리 바라보고 비껴 보고 싶은 심정인지도 모  를 일이다.

 장례절차는 나라마다 또는 역사의 변천과 신분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나라는 풍수설이나 관습으로 아직까진 매장을 더 선호 하는 것으로 나타나있다. 그러나  차차로 화장의 비율이 늘어남은 참 고무적인 일이다. 매년 서울 여의도 면적의 1.2배가 장지로 잠식 된다고 하지 않는가. 

 생자필멸 (生者必滅) 언젠가는 꼭 오고야 만다. 
이렇듯 수많은 주검들의 발밑에 서게 되니 평소에 등한 하고 지냈던 내 존재의 무게나 빛깔도 거듭 헤아려 보는 계기가 되었다. 영혼의 월동 준비는 바로 살아있는 지금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귀로의 차안에서 ‘헤르만 헷세’ 의 시 한 연을 되뇌어본다.

말을 타고 갈 수도 차로 갈 수도 
돌아서 갈 수도 셋이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마지막 한걸음 
혼자서 걸어야 한다.

 

팬 풀룻 연주/  아, 목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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