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재 62

한국수필 12월호 / 황혼의 들녘에서

특집2 12월의 마음 김경실 | 아픈 엄마 지구(2) 김귀자 | 엘리제를 위하여 김기현 | 곡선(曲線)의 미 김순란 | 내가 품은 것들 김정식 | 무소의 뿔처럼 김정옥 | 짓는 중 김종선 | 황혼의 들녘에서 (본인글) 김중희 | 쉰 살 먹은 괘종시계 김현순 | 뜰 안에 사계 박혜자 | 인생은 물처럼 바람처럼 백승국 | 얼굴 서영수 | 들 이야기 황혼의 들녘에서 김종선 남편의 산소 옆에 아까부터 앉아있었다. 바로 이 자리는 내가 영원히 잠들 저 세상 집터이기도 하다. 승용차를 없앴기에 꽤 오랜만에 혼자 왔다. 바람이 휙 지나갈 때마다 낙엽이 우수수 춤을 춘다. 지난 추석에 왔을 때만 해도 좋아하는 보라색 빛을 띤 들국화가 무리를 이뤄 반겨주었는데 어느새 고개를 떨구니 보이고 느껴지는 것들, 서걱서걱 늦가을..

나의 서재 2021.12.24

수필의 모습

가운데 키 큰 분 본글을 쓴 정목일 수필가님, 우측 두 번째 김우종 평론가 님, 우측 맨 끝 본인 (목향) 수필의 모습 鄭 木 日 수필은 고해성사와도 같다. 촛불 앞에서 자신이 지닌 모습을 그대로 진실의 거울 앞에 비춰보이는 일이다. 자신의 참모습을 드러내기 위해선 맑게 닭여진 마음의 거울이 있어야 한다. 수필은 촛불 앞에서 행하는 고해성사, 그 자체는 아니다. 모든 것을 진실의 거울앞에 다 드러내 놓았을 때, 마음 속으로부터 넘쳐 흐르는 눈물을 다 흘리고 난 뒤의 독백같은 것이 아닐까한다. 온갖 감정의 앙금과 갈등의 응어리를 눈물로서 씻어내고 자신의 영혼이 맑은 거울을 갖게 되었을 때, 수필의 모습은 비로소 드러난다. "이것이야말로 나의 참모습이며 영혼이다." 무심결에 탄식처럼 토해내는 이 독백이 수필..

나의 서재 2021.07.16

영화, 윤희에게 글 / 김종선 (목향)

영화, 윤희에게 “너를 만났던 시절, 참으로 행복을 느꼈어. 그렇게 충만한 삶은 결코 또 오지 않을 거야. ” “너는 나한테 동경의 대상이었어. 너를 만나고 나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어.” 위 구절은 영화 ‘윤희에게’ 에서 두 주인공 편지글의 한 대목들이다. 이 두 사람은 고등학교 동창이고 한 사람은 한국인, 또 한 사람은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로 보통우정을 넘어 동성애 관계다. 하지만 영화 전반 어디에도 에로티시즘적 언어나 몸짓은 한 장면도 없고 편지를 한 번씩 쓰는 것으로 주를 이루지만 뒤에 실제 만났을 때도 표면적으론 두세 마디의 인사가 전부다. 아마도 이러한 함축적이고 절제된 영상이 상상의 나래를 펴고 내일을 짐작하고 꿈꾸게 하기에 잔잔한 매력으로 다가오지 ..

나의 서재 2021.01.27

글은 글이 말한다

글은 글이 말한다 김종선(목향) 계곡의 물소리는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로 착각할 만큼 어쩜 그리도 음향의 고조가 똑같은지 문을 열고 내다보고야 확인할 정도였다. 한 박자도 오차 없이 같은 가락으로 흘러간다. 밤은 깊어 가는데 아무리 잠을 청해도 정신은 오롯이 말짱하다. 집을 떠나면 내가 가장 걱정하는 일이 바로 이런 시간, 그래서 당일치기가 아니면 잘 나서지 않는 편이다. 제11회 ‘수필의 날’ 행사 안내문을 받았다. 한 귀퉁이에 내 이름이 보였고 수필의 환기가 절실한 데다 특히 장소가 강릉이기에 참여하기로 했다. 산수 수려한 관광도시, 철썩철썩 흰 거품을 물고 주름지어 밀려드는 파도, 경포대의 먼 수평선을 바라보며 찌든 스트레스를 날리고 오죽헌을 비롯한 역사의 장도 둘러보며 문우들과 어울리고 싶기도 했..

나의 서재 2020.12.13

지금 이 자리에

낙산사 부처님을 뵙고 의상대에 앉았다. 흰 거품을 내 뿜으며 넘실대는 파도, 아스라한 먼 수평선, ‘경관이 참 좋구나.’ 거슬러 4년 전 이맘때 그날도 이 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곳을 응시하는 겉모습은 누가 보아도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을 진데 마음은 천양지판이란 말을 써도 무리가 아닐 듯하다. 그러고 보면 육신은 마음의 하수인인 듯, 모든 것에 머리가 우선한다. 그때는 유방암 수술을 받고 열흘쯤, 남편을 멀리 보내고 마음을 못 잡아 서성이던 참인데 설상가상 나 또한 병치레를 혹독히 치르느라 살는지 죽을는지 아득했었다. 당장 코앞에 닥친 항암치료를 받을까, 말까를 놓고 깊은 고뇌에 쌓여있었다. 실상 수술은 눈 한번 감았다 뜨면 끝나지만, 항암 부작용의 고통은 미루어 짐작..

나의 서재 2020.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