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고향 땅을 밟으며

목향 2022. 11. 6. 14:13

* 나의 고향

<충북 제원군 덕산면 도전리>

* 내가 졸업하고 오랜기간 교사로 근무했던 추억의 장

* 내 고향 덕산면은 월악산 국립공원이 위치하여 산수가 수려하고 성천이 면 중심부를 흐르고 있어 수원이 풍부하다. 토질이 비옥하여 농업 약초, 고추, 과수 등 경제 작물 위주의 영농소득이 높은 편이다.

면소재지로 인심좋고 소박하고 서로돕는 마을이다.

* 아흔둘이신 숙부님 모시고 우리 형제들은 고향을 찾았다.

언제나 고향에 가면 기쁨과 슬픔이 교차한다.

고향이기에 아련한 추억과 함께 기쁨이 크지만 모든 것이 떠나고 변해버린 벌판 같은 느낌이들어 휑한 가슴을 여미기 힘들다.

 

<사진 설명>

상 :옛우리 농토 , 하,좌 : 선산에서 본 조망권 , 멀리 흐릿하게 월악산 영봉이 보인다.

하,우 : 언제나 아름다운 충주호 (고향땅 가는 길에 )

어린시절 저 들판에 내 발 찍히지 않은 곳이 있을까? 

* 세월이 많이 흐른 탓에 외가 쪽 어머니 형제분들 다 돌아가시고 유일하게 친가 쪽 막내 숙부님만 지금껏 생존해 계시다. 한 분이라도 생존해 계시니 집안의 어른으로 우리 형제들에겐 축복이다. 워낙 높으신 연세지만 좀 더 건강히 살아계시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 숙부님은 젊은 시절 공군 장성이셨다. 서슬이 퍼렇고 안광이 빛나셨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기개는 보이지 않지만, 아직 귀도 눈도 밟고 목소리 카랑카랑하시어

참으로 고맙고 다행한 일이었다.

상: 점심식사 , 오른쪽 끝 두 사람은 6촌 동생 내외로 고향을 지키며 대 소사에 많은 도움을 준다.

오늘 음식점도 이 동생이 알아봐 주었다. 늘 고맙게 생각한다.

하,우 : 내 막내 동생과 함께

 

* 세월은 흐르고 우리 형제자매도 많이 늙어버렸다.

그러나 이런 일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 생로병사! 죽지 않고 모두가 영원히 산다면 그것이야말로 세상 종말이다.

하지만 무릎 꿇어 감사한 일! 지금까지 내 형째 자매 한 사람도 낙오 없이 모두 다 생존해 있다는 사실이다.

자주 만나기도 하지만, 한 해 한두 차례 연례행사처럼  원근 간 관광길에 오르며 우애를 다진다.

* 숙부님과 여동생

숙부님께서

바위에 걸터앉으며 우리 형제들에게 할 말이 있으시다고 하신다.

우리는 무슨 말씀일까? 의아해하며 자리에 앉았다. 막내 여동생이 허리가 좋지 않아 숙부님 곁에 앉고 다른 형제들은 자리를 펴고 바닦에 둘러앉았다.  일 성!

 

“ 내 나이가 이제 너무 많아지고 보니 세상 모두 허무하고 후회되는 점이 많다 . 그중 너희들을 실제 돕지도 못하고 사랑을 전하지 못해 미안했다. 그래서 작지만, 금일봉을 준비했으니….”

나는 울컥했다. 아마도 나뿐이 아닐것이다. 돕지 못했다고 하셨지만 우리 형제들은 실제 도움을 많이 받은 편이다. 예를 들어 사회 첫발을 내디딜 때 보증인을 세울 때가 있다.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이 분이 서명했으니 덕을 본 셈이다.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뭔가 작더라도 보은의 기회를…….

 

작년보다 너무 야윈 모습이 마음을 안타깝게 했고 몇 장의 사진을 넘겨 드릴 수 없음이 슬프기도 했다.

숙부님! 제발 집안의 기둥으로 오래오래 저희 곁에 계셔주세요. 빌고 또 빌었다.

내 고향도 영원히 발전, 발전하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