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정 일기

제목 : 2004. 9. 20. 월. 휠체어에 앉아....

목향 2009. 5. 1. 16:33

제목 : 2004. 9. 20. 월. 휠체어에 앉아....

비가 내렸고
방송국으로 가는 자동차 안에서는
음악비가 내렸다.

언제나 내 가슴이 울컥 하도록 만드는
단조의 첼로 연주곡이다.

이제 암세포가 자라고 있는 오른쪽 다리의
어느부분 신경이 마비되어
마취를 한 듯 뻣뻣해져 버렸다.
그리고 통증은 지독히도 나를 괴롭히지만
"그래... 어느 만큼 아플 건지....
아플만큼 아파봐라....." 하고 진통제의 힘을 빌린다.

다리 하나 못 쓰는 일로인해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아졌다.

그리도 내가 광적으로 좋아하던
'스키'를 탈 수 없어졌다.
인라인 스케이트도, 자전거도 못 타며
뛰는 것은 커녕, 걷는 것도 할 수 없어졌다.

목발을 짚을 때는 책 한권도 들고 다닐 수가 없어졌다.

목발을 짚고도 거리에 나서기가 불편해
괴로움을 겪는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울퉁불퉁한 보도블럭과 만나고
드높은 계단이나
차도와 보도 사이의 높은 턱을 만난다.

사람들 발에 목발이 걸려
넘어질 뻔 한 적도 많다.
건물의 유리문은 열기도 힘겹다.

목발을 짚고 다니는 일도 그 정도로 불편한데
휠체어를 타고 혼자 밖으로 나온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은 아예
밖에 나돌아 다니지도 말라고 만들어 놓은 도시 같다.
휠체어를 타고 건물의 유리문을 연다는 것은 더욱 어렵다.

다행히 집안에는 문턱이 거의 없어
휠체어 이동이 가능하지만
씽크대 찬장은 너무나 높고
개수대도 내겐 너무 높다.
냉장고를 열어 물건을 꺼내기도 벅차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른다더니.....
실제로 휠체어를 타고 살아야 하다보니
장애를 가진 분들의 고생을 실감할 수 있었다.
.........
.........

휠체어에 앉아 비내리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볼일을 보고 들어오던 언니가 말했다.
"너 그렇게 있으니까,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얘!"
"그래? 맞아. 옛날엔 그런 영화 많았지?"
나는 웃으며 언니의 말을 받고
휠체어를 돌려 식탁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만 이야기했다.

'그래.... 차라리 영화의 한 장면 이었다면 좋겠다. 그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