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 선생의 혼이 깃든 도산서원 |
경상북도 안동군 도산면 토계동에 위치한 도산서원은 조선 중기 성리학의 대학자이신 퇴계 이황선생이 명종16년(1561)에 도산서당과 농운정사를 직접 지어 이곳에서 인격을 수양하고 학문을 연구하며, 강론을 통해 나라의 백 년대계(百年大計)를 위해 아주 바르고 참되고, 양심있는 인재를 많이 길러낸 사학(私學)의 원천으로, 요즘 같으면 사립학교와 같은 교육의 전당이다.
도산서당이 서원건물 중에서 가 장 작은 것을 보아도 선생의 소박함을 알 수 있다. 선생이 돌아가신 4년 후인 1574년에는 제자들과 유림들이 힘을 합해 후학을 가르치던 도산 서당 뒤편에 선생을 추모하고, 선생의 학문을 이어받기 위해 도산서원을 건립하였으며, 그 다음해인 1575년에는 선조 임금께서 한석봉 친필인 '도산서원(陶山書院)'의 현판을 하사하 시어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되었다. 1969년에는 사적 제170호로 지정하여 선생의 학문사상 과 애국심을 기리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 규 모 - 사적지 324,945㎡, 건물 15동
* 차에서 내려 도산서원으로 들어가는 길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조금 들어가다보면 우측으로 강줄기가 휘돌아 흐르고 드넓은 공간이 가슴을 연다. 문득 야트막한 동산 벤치에 한 노인이 외롭게 앉아 있는 모습이 너무 고독해 보여 한 컷,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난 세월을 아쉬워 ......
* 시사단 : 조선정조 16년 (1792) 에 정조임금이 평소에 흠모하던 퇴계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지방 선비들의 사기를 높여주기위하여 어명으로 특별 과거인 <도산별과> 를 시험보던 장소임 <바로 위, 아래 사진>
* 도산서원에 들어서니 제일먼저 화단에 붉게핀 목단꽃의 아름다운 자태와 향기로 우리를 맞아 주었다.
* 도산서당 : 퇴계선생께서 4년에 걸쳐 지으신 건물로 몸소 거처하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거처하시던 방은 <완락제>라하고 마루는 <암서현> 이라하였다.
광명실 : 책을 보관하는 서고로서 현판은 퇴계선생의 친필이다. 동, 서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습해를 방지하기위하여 누각식으로지었다.
* 전교당 : 서원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조선 선조7년(1574) 에 건립된 대 강당이다.
도산서원의 사액 현판이 게시되어 있으며 스승과 제자가 함께모여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다.
* 위기둥 양편으로 난 구멍은 공기 소통구란다.
* 신 기 독
* 혼 천 의
*도산서원
사적 제170호. 1574년(선조 7) 지방유림의 발의로 도산서당(陶山書堂)의 뒤편에 창건하여 이황의 위패를 모셨다. 1575년 선조로부터 한석봉(韓石峰)이 쓴 '도산'(陶山)의 사액을 받았다. 영남유림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당시에도 훼철(毁撤)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의 하나였다.
1969~70년 정부의 고적보존정책에 따라 성역화 대상으로 지정되어 대대적인 보수를 했다. 경내의 건물로는 이황과 제자 조목(趙穆)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상덕사(尙德祠:보물 제211호), 서원의 강당인 전교당(典敎堂:보물 제210호), 향례(享禮) 때 제수(祭需)를 두던 전사청(典祠廳), 유생들이 거처하던 동재(東齋)·서재(西齋), 장서(藏書)를 보관하던 광명실(光明室)·장판각(藏板閣), 이황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도산서당, 제자들이 거처하면서 공부하던 농운정사(?雲精舍) 등이 있다.
매년 봄과 가을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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