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여행

대륙 중국에 가다 (4) 만리장성, 자금성, 천안문광장)

목향 2010. 7. 4. 18:27

 

대륙 중국에 가다 (4) 만리장성. 자금성, 천안문광장)

 

 

장가계 관광을 마치고 천진을 거쳐 북경으로 들어왔다.

장가계 허화공항에서 예정시간보다 2시간 정도 늦어 밤12시에 출발 약 2시간 15분 정도 지나 천진에 도착되었다. 호텔에 투숙 잠자리에 든 시간은 새벽 4시경, 오전 7시경 천진에서 버스로 북경에 들어오게 되니 잠은 2시간 정도 잤을까?


고로 만리장성에 도착 될 때까지 버스에서 그나마 부족한 잠을 때웠다. 내가 중국 투어 중 느끼는 건데 중국 국내비행기가 제시간에 이륙하는 하는 것을 본적이 없다. 또한 게이트도 마음대로 바뀐다. 방송을  귀 기울려 듣지 않으면 탑승할 수 없게 되기 일쑤다. 언젠가는 상해에서 북경으로 오는데 무려4시간이나 연발하는 거였다. 중국 사람만 이용하는 것도 아니고 어째서 그런가? 질문하니 우리나라는 항공사가 2개 (아시아나, 대한항공) 밖에 없지만, 중국은 무려 18개나 되기 때문에 공항이용 상 어쩔 수없다는 가이드의 대답이다.


* 북경에 도착하여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만리장성 및 자금성, 천안문 광장, 동인당및 진주쇼핑센터를 거쳐 북경공항에서 일행과 헤어졌다.  우리자매는 딸 아이가 차를 가지고 마중 나와 반갑게 만났고 다른 일행은 아시아나편으로 한국행, 며칠 되지 않았지만 약간은 아쉽게 같이한 일행들과 헤어졌다.   

* <자금성,천안문광장, 만리장성> 은 이번 방문이 네 번째가 되는 것같다. 고로  특별히 새로운 느낌이...

 

*세계문화유산 만리장성  

 

 

 

 

* 만리장성에 도착하니 하필이면 케이블카가 운행되지 않는 단다.

재 정비로 새롭게시설중에 있단다.

나는 몸도 너무 피곤하고  네 번째 방문이니 새롭게 느껴지지도 않아 조금 오르다  그냥 내려왔다.

수 많은 사람들이 오르고 있었다.  

몇 번을 보아도 역시 장대하다, 세계문화 유산에 등재 될만했다. 중국 제1의 자랑이 아니던가. 

 

 

위 사진 비석뒤로 많은 사람이 오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만리장성(萬里長城) : 중국 역대 왕조가 변경 (나라의 경계) 을 방위하기 위해 축조한 대성벽. 장성이라고도 한다.

길이 약 2,700㎞로 중복부분을 포함하면 5,000㎞에 이른다. 춘추전국시대에 여러 나라가 국경에 성벽을 구축하였는데, BC 221년 진(秦)나라의 시황제(始皇帝)는 천하를 통일하게 되자, 흉노(匈奴)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벽을 개수, 랴오둥〔遼東〕에서 린타오〔臨眺〕까지 장성을 구축하였다. 이것은 현재의 장성보다 북방에 위치한다.


한(漢)나라의 무제(武帝)는 장성을 서쪽의 위먼관〔玉門關〕까지 연장하였고 수(隋) 당(唐)도 장성을 강화하였으나 오대(五代) 이후 장성지대를 북방민족에게 빼앗겨 방어의 의의가 소실되기도 했었다.

명(明)나라에 이르러 몽골의 침입을 막기 위해 장성을 정비, 현재의 규모를 갖추었다.

 

*영화 <마지막 황제>의 배경인 자금성(紫禁城))

 

 

 

북경시의 중심에 위치한 명·청대의 황궁으로, 천안문 정문으로 들어가 울창한 가로수 길을 따라

단문과 오문을 지나 보이는 곳이다. 중국에서는 고궁(故宮)이라는 이름이 더 친근하게 이용되고 있으며

'자금성'이라는 이름은 "천자의 궁전은 천제가 사는 '자궁(紫宮)'과 같은 금지 구역(禁地)이다"

라는 데에서 연유된 것이다.

 

전체 면적은 72만㎡이며, 총 9999개의 방이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고대 궁전 건축물이다. 

9999개의 방의 전설은 천제는 10000개의 방에서 살았다는 것인데,

 중국의 황제는 그중에서 1개의 방을 제외해서 9999개의 방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라고한다.

정말 9999개의 방이있는지 누가 세어 본 사람이 있는지?  

하기야 보기만 해도 엄창난 규모니 실제 그럴지도 모를 일이지. 

 

1406∼1420년에 건조된 이래로 56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15명의 명나라 황제와 9명의 청나라 황제가 일생을 보냈고,

현재는 105만점의 희귀하고 진귀한 문물이 전시·소장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자금성은 외조와 내정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오문과 태화문을 지나면 흔히 '3전'이라 부르는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이 나타난다. 3전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자금성의 내정에 이르게 되고

이곳에는 건천궁, 교태전, 곤녕궁 등이 있으며 동쪽과 서쪽에는 각각 동육궁과 서육궁이 자리잡고 있다.

 

 

 

 

* 방화수 설치용 : 커다란 금빛 항아리

 

 

* 몇 번이나 지붕에서 시선을 떼지못하고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약 20 여년 전인가, 처음으로 이곳을 방문했을 때,

물론 큰 규모에 도 놀랐지만,

지붕의 황금색이 너무도 멋졌고, 매력적으로 마음에 자리잡고 있기때문이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그 빛은 여전했다. 참으로 고색창연하다. 

 

 

 

* 태화전에 이르러 내부도 문틈으로 들여다보고 조금더 시간을 지체했다. 

그것은 영화 (마지막 황제 푸이) 의 장면이 자꾸 오버랩 되기때문이었다.  참 그영화 감동깊게 보았지.  

거의 마지막 장면 :<푸이>가 평민이 되어 한 때 영화를 누리던 그 왕좌에  다시 올라 옛날을 회상하던 그 장면말이다.

   

사진 찍기에 바쁘고 너무 정신을 빼앗기다 여기에서 일행과 떨어지게 되었는데 나가는 길을 알고 있기에 당황하지는 않았지만,

동생이 헐레벌떡 찾아 나서는 약간의 소동을 벌리게 되어 미안했다.   

 

 

 

* 가운데 길은 황제만이 다니던 길이라고 한다. 

 

<참고 : 마지막황제 푸이 영화 내용>

 

1950년 하얼빈역. 44세의 푸이가 소련군의 감시 아래 중국인 전쟁범 800명과 함께 조국으로 돌아가는데서

시작되어, 수인번호 981을 달고 자기비판의 생애를 기록하며 황제였던 과거를 회상한다.

 

 1906년 자식이 없는 광서제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세살 푸이는 즉위 3년째 신해혁명을 당해 궁중 생활의 마지막을 맞는다.

 

연금 생활인 자금성에서의 거주 동안, 결혼을 하고 시대 상황을 깨달은 푸이는

영국인 가정교사의 영향으로

유학에의 꿈을 가진다. 그러나 1924년 군사 쿠데타에 의해 일본으로 피한 푸이는

유학에의 꿈을 상실한 채 일본 특무기간원의 감언에 넘어가 만주국의 집정이 되고

2년 후에는 황제로 등극한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패전한 일본으로 탈출을 시도하려던 푸이는 소련군의 포로가 되었다가

중공으로 이송되어 형기 후 평범한 시민이 된다.

 

 

 

 

 

* 태화전을 뒤로하고 한컷 :두 동생


방어의 목적으로 궁전 밖에는 10m 높이의 담이 있는데, 사방에는 성루가 있고

밖에는 넓이 52미터, 깊이 6미터의 호성강(護城河)이 흐른다. 4면의 담에는 각기 문 하나씩이 나있는데

남쪽에 오문(午門), 북쪽에 신무문(神武門), 동쪽에 동화문(東華門), 서쪽에 서화문(西華門)이 있다.

 

1988년 개봉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배경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꼼꼼하게 관광을 하는 데에는 하루가 꼬박 걸리고 그냥 가로질러 가는 데에만도 2시간 정도가 걸릴 만큼 넓은 곳이다.


요즘에는 세계적인 문화공연도 종종 열려 문화유적지나 관광지로서 뿐 아니라 중국시민의

휴식장소, 문화장소로서도 이용되고 있다.


1987년에 이르러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천안문 광장

 

 

* 장가계에서는 유럽사람을 단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한것 같고, 주로 일본,중국,한국인들이 많았다. 

북경에 오니 (만리장성,자금성,천안문 광장) 서양인 관광객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느낀것인데 천안문 광장 그 번잡한 지하도에 노숙자들이나 구걸행각의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걸 보니  2008 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얼마나 시가지를 정비했는지 짐작 할 수 있었다. 

 

 

천안문 광장

베이징의 심장부로 정부의 중앙관청이 밀집되어있다. 인민대회당, 모주석기념당이 있고

그 외에도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연회장, 제국인민대표회의 집무실, 전국 각 성·시·자치구의 회의실등이 자리잡고 있다. . 매년 국경일이 되면 모택동은 천안문 위에 올라서 백만 붉은 군대를 사열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문화혁명을 비롯  1989년 중국 민주화를 위해서 수 많은 중국인 피를 흘린 곳이기도 하다.  

 두 번의 천안문 사건이 일어난 장소이기 때문에, 중국 정부나 중국공산당에 비판적인

시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대비한다고 한다.  

 

천안문 상단부분에는 학교, 관공서 등에서 사용되는 중국 국가 휘장이 걸려 있고 중앙에는 모택동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데,

초상화는  문화재로 색이 바래면 매년 중국에서 가장 실력 있는 화가가 바로 보수한다고 한다.

 

국내 외의 관광객으로 넘치고 있지만, 국가적 상징 시설로 잘 활용되고 있으며, 많은 경비병이 순찰을 하고 있다.

광장 북부에는 국기게양대가 있어, 일출과 일몰에 맞추어 매일 경비병에 의한 국기의 게양식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실시된다. 또 야간은 특정일을 제외하고는 출입금지 지역이 된단다.

 

 

 

* 인민대회당 

 

인민대회당은 천안문광장 서쪽에 위치하며 우리나라의 국회의사당에 해당한다.

1958년 10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1959년 8월에 일년도 걸리지 않아서 완공하였다.

중요회의가 개최되지 않는 기간에는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하다.

높이 46m, 길이 336m, 너비 206m에 건축면적은 171,800㎡에 달하고 위에서 본 전체모양은 평면은 '山'자형이다.

 

대회당의 정면에는 높이가 25m에 달하는 12개의 대리석 문주가 있으며, 사방 외벽을 받치는 143개의 석조기둥과 황금색으로 도색된 5개의 통먼(金門)이 장관을 이룬다. 밤에는 인민대회당의 지붕을 따라 수백 개의 조명이 켜지는데

천안문의 붉은 벽과 흰 조명이 어우러져 야경이 아주 멋있다.

 

 

 * 모주석 기념당 


천안문 광장 남쪽에 위치한 모주석 기념당은 1976년9월에 서거한 모택동을 기념하기위해12억위안( 300억원)의

비용을 들여 사후 1주기인 1977년9월9일 완공하였다.

바로 기념당의  내부에는 방부처리 후 보존된 모택동의 사체를 관람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또한  모택동,  쩌우언라이 (주은래)  등에 관한 전시실도 있지만 평상시는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는다고 ...

 

건축물은 대추색의 화강암으로 지어졌으며, 높이 33.6m의 정방형모양으로 ,면적은 105㎡로 44개의 팔각형 화강석

기둥이 외곽 복도를 둘러싸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웅대하고 장엄하다.  

 

 

 

*막내 여동생 :  저 뒤로 우뚝 솟아 있는 기둥 <인민영웅기념비> 

그리고 저 뒤에 보이는 붉은 깃발이 꽂혀있는 앞쪽에 대형 전광판이 2개가 보인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보았다. 실시간으로 화면이 변하는 것으로 보아 중국의 홍보용 판인것 같다. 

사진에는 잘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화려함으로 인해 온 광장이 빛나는 듯 했다. 

 

  <국기게양식>


현재 천안문광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볼거리는 해가 뜨는 새벽에 거행되는 국기 게양식이다.

행진곡과 함께 군인들이 정렬하여 나타나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게양하는데,

이 의식에 걸리는 시간만 거의 30분 정도 소요된다. 국기 게양시간과 강하 시간은 매번 조금씩 다른데 그 이유는

넓은 중국 대륙에서 해가 뜨고 지는 자리와 천안문 광장의 지평선이 서로 일치할 때를 계산하여 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게양식이 거행될 때에는 자전거를 타고 광장을 지나갈 수 없고 대신,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가는 것은 괜찮다.

일출과 일몰 무렵이면 이 장엄한 의식을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게양대 주변이 붐비는데 특히 국경일이나

신년 같은 특별한 날 아침에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