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너를 위한기도

목향 2008. 11. 30. 11:06

            < 아래 글 소개>

 

* 아래글은 10여년전 막내가 대학전기대에서 낙방하고 서울 노량진 <대성학원에서> 재수하게되면서

 <너를 위한 기도>란 제목으로   글을 쓴것인데 그중 일부를 소개하는것이다

  어느 지인이  금년 아들이 대학입시에 임하게 되면서 글 전체를 올려 <다음카페: 끝까지 함께해요> 주었는데

  그 마지막 부분을 여기에 옮겨온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학부형이나 학생들이 바라는 염원은 동일하다는 생각이 들어 거듭 요망하는 차원에서 옮겨온 것이다.

 

      <중략....... >

 

 아이 셋이 다 다른 입시제도에 의해서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다.

본고사가 생기기도 하고 수능의 반영 비율이 왔다 갔다 하고 논술의 비중이 어떻다느니 참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또한 이번에 아이를 학원으로 보내면서 느낀 바도 많다.

사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계비의 절대적이라는데 거기다 바다건너까지 가는 이가 많으니

그 후유증도 결코 만만치 않다.

 

우선 돈을 떠나 기러기 아빠, 엄마란 말이 생겨나고 거기에 따른 파장은 얼마나 거센가.

세계에서 우리나라 아이들이 가장 불쌍하단다.

그 성적으로 인해 꽃도 피기전에 자살이란 극단적 행위로 목숨을 버리기도 하니 참으로 중대한 일이다.

학력별 임금격차, 학벌 중심의 파벌의식 속에서

인류학교 일류학과를 선택하는 일을 나무랄 수 만도 없는 노릇이 아닐까.

그러나 이러한 폐단은 기필코 시정 되어야 한다고 힘주고 싶다.

 

각자의 얼굴이 다르듯이 자질 능력 지능 발달과정이서로 다른데 어떻게 다같이 높은 문턱만 쳐다볼 수 있는가.

점수위주의 교육보다는 윤리의식을 심어주고 능력과 취미에 따른 분야에서

차별의식 없이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다면 왜 일류병이 생겨날까.

 

원컨데 다각적으로 의견을 수렴해서 획기적 최선책으로 최상의 제도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고

그렇게 세워진 제도라면 좀 장기적으로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갔으면 싶다.

너무 자주 바뀌니 학생,교사,학부모 다같이 피곤하다.

제발 새로 수립되는 입시제도는 가장 공평하고 정확하게 선별되는 제도이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마음이다.

그간 내신의 불합리라든가 불공정한 판별기준으로 억울하게 손해 보는 일도 다반사였다.

 

모든 기구나 제도는 모두에게 평등해야 한다. 우연이라든지 운이 좋다는 것으로

또는 금전이나 특정인의 권리로 순서가 뒤바꿔 질 수 있다면 이 헛김 빠지는 세상,

살맛나겠는가. 그러기에 '기여금 입학'같은 것은 꿈에라도 실현될까 겁나는 사람이다.

빈부의 격차나 계층간의 통로구실로도 대학의 문은 모두에게 공평한 잣대로 열려 있어야 한다.

외출해서 집에 들어오면 나는 제일 먼저 문간방인 막내방을 연다.

주인 없는 썰렁한 공간이지만 액자 속의 그 아이는 언제나처럼 환하게 나를 맞는다.

'막내야, 힘내. 너는 할 수 있어. 너는 당당히 1등급 아니니?

윤영아, 너는 해낼 수 있어.

너를 위해 엄마는 기도한단다. 

 

<그 이후 이야기>

  당시 막내는 전기대 명문 치의예를 낙방하고 1년재수해서 약대로 들어가 현재 서울소재 약국에서 관리약사로   근무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