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의 유령
알다시피 세계 4대 뮤지컬은 레미제라블, 캣츠, 오페라의 유령, 미스사이공 이다.
뮤지컬이 영화만큼 친근감이 없는 것은 아무래도 일반화 되어있지 않은데다 관람료도 비싼 편이지만, 사실 퇴임 전 까지는 시간과 여유도 없었기에 쉽게 접근 할 수없어 안목 또한 부족한데 있지 않았나 싶다. 술이나 담배 춤은 그렇다 손 치더라도, 그 흔한 고스톱도 못하니 아예 그런 놀이에서 오늘 즐거움이나 유흥은 담을 쌓고 지낸다. 하기야 누군가 권한다 해도 취미도 없고 보기보다 달리 누구와 쉽게 어울리지도 못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기에 너무 삭막한 내 삶에 활기를 넣기 위해서 음악을 듣거나 여행을 하게 되고 볼거리를 찾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서울의 한 친구한테서 연락이 왔다. 서울 세종문화 회관에서 ‘레미제라블’ 이 공연되는데 브로드웨이 뮤지컬, 오리지널 팀의 공연이라며, 볼만 할 거라는 해설까지 덧붙인다. 예매를 해놓겠으니 올라오란다. 이렇게 해서 그 대형 뮤지컬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드디어 문은 열렸고 전 세계 33개국 5천만 관객이 본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 선전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대단했다. 무려 3시간의 공연인데도 금방 인 것처럼 공연에 푹 빠졌고 끝났을 때는 관객 모두가 기립박수로 열광했다. 그들도 활짝 핀 목련 같은 웃음꽃을 피우며 몇 번의 커튼콜로 답해주었다.
‘내용은 이미 알고 있던 작품이었지만, 너무도 감동을 주었기에 또 한번의 기회를 기대하고 있던 차 마침 서울예술의 전당에서 ‘오페라의 유령’ 이 공연 된다는 연락이 왔기에 선 뜻 응하게 되었다. 이 작품 역시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팀의 공연이라니 참으로 반가웠다. 이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마침 뜻있는 후배와 함께 가기로 했다.
멀리 바다건너 까지 가서 볼 수야 없겠지만, 내 나라에서 감상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당일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니 자못 설레고 흥분되었다. 초여름의 날씨는 쾌청하고 모처럼 나들이에 산야의 싱그러움에 취하니, 그 또한 기분 좋은 일이었다.
이 작품은 프랑스의 추리작가 ‘가스통 르루’ (Gaston Leroux) 가 1910년에 발표한 소설을 영국의 작곡가 ‘앤드루L.웨버’ 가 뮤지컬로 만든 작품이다. 뮤지컬 뿐 만아니라 영화로도 상영되어 대단한 인기를 끈 것으로 알고 있다. 1988년 뉴욕 토니어웨어 에서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을 비롯해 7개 부문을 수상했다고 했고 불멸의 감동이니 브로드웨이 최고의 캐스트에 세계를 뛰어넘는 뮤지컬 이라는 선전 문구만도 참으로 화려했다. 드디어 조명이 꺼지고 오케스트라의 장중한 음악과 함께 막이 올랐다.
줄거리를 요약하면 옛날을 회상하는 첫 장면의 무대로 경매가 한창 열리고 있는 1911년 오페라 하우스로 돌아간다. 70세 노인이 된 주인공 라울이 휄체어에 앉아 오페라 광고포스터와 뮤직 박스를 구입 하고 있는 장면이다. 이때 경매인에 의해서 소개되는 오페라하우스의 샹들리에가 서서히 등장되고 순간 번쩍하는 섬광과 함께 수십 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1861년으로 뒤돌아가 당시 파리 오페라가 절정에 달했던 옛날의 오페라하우스로 바뀌게 된다. 그러니까 오래전에 ‘유령’과의 인연으로 얽혀졌던 수십 년 전의 무대로 되돌아 간 것이다.
무대는 새로운 오페라 ‘한니발’ 리허설이 한창인데 도중 갑자기 무대가 무너지고 수라장이 된다. 사람들은 항상 오페라 하우스 5번 박스 석에 자리하는 괴 신사, ‘유령’의 짓이라고 수군거린다. 그 ‘유령’은 천상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타고 났지만 사고로 흉측한 얼굴이 되어 가면으로 가리고 지하 은신처에서 생활한다. 마침 연습에 열중하던 프리마돈나 ‘칼롯타’가 화도 나고 두려워 더 이상 무대에 설수 없다고 퇴장하자 합창단원들의 추천으로 무명의 ‘크리스틴’ 이 등장하여 멋지게 성공시킨다. 그때 객석에 앉아있던 재정후원자 귀족청년 ‘라울’은 새로 추천된 ‘크리스틴’이 바로 어린시절의 친구였음을 알아보고 재회하여 저녁식사를 약속하게 되는데 그때 연미복의 하얀 가면을 쓴 유령이 숨어있다 틈을 내어 ‘크리스틴’을 데리고 미로처럼 복잡한 지하로 검은 돛단배를 타고 사라져버린다.
‘오페라의 유령’은 ‘크리스틴’에게 반해 순수한 사랑을 고백하지만, ‘크리스틴’ 은 생 얼굴, 그 흉측 한 얼굴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그에게 묘한 매력도 느낀다. 유령은 자신의 음악을 ‘크리스틴’ 에게 가르치게 되며 다음 공연 작품은 자기의 작품을 공연하라는 메시지를 보내며 ‘크리스틴’ 에게 그 작품의 노래도 직접 불러줄 것을 간절히 권하나 이를 거절하자, 그 큰 샹들리에가 무대로 떨어지며 순간 한직원이 살해되고 무대는 삽시간에 뒤죽박죽이 된다. 이러한 유령소동이후 한동안 유령이 나타나지 않게 되자 그사이 ‘크리스틴’ 과 ‘라울’은 비밀 약혼까지 했는데 어느 날, 또다시 ‘유령’이 나타나 자기가 작곡한 ‘승리의 돈 주앙’을 공연 하라고 협박한다. 이에 어쩔 수없이 ‘승리의 돈 주앙‘이 무대에 올라 공연되는데 절정에서 가면을 벗은 ‘유령’의 정체가 폭로된다. 그때 혼란한 틈을 타 ‘유령’은 다시 ‘크리스틴’ 을 데리고 은신처 지하로 내려간다.
이로 인한 혼란 속에 격한 군중과 경찰이 그들을 찾기 위해 지하로 내려가나 ‘유령’은 몰래 ‘라울’의 등 뒤로 살그머니 다가가 마법의 밧줄로 ‘라울’의 목을 조르게 된다. 이어 유령은 두려움에 떠는 ‘크리스틴’ 에게 ‘라울’의 죽음을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자신의 사랑을 선택하든지 양자택일 하라고 명령한다. 어쩔 수없이 놀란 ‘크리스틴’은 그 흉측한 외모와는 달리 영혼이 맑은 그에게 살며시 다가가 입맞춤하자 감동 받은 유령이 그 밧줄을 풀어주고 빨리 떠날 것을 권한다. 둘이(라울과 크리스틴)떠나고 난 뒤 유령의 은신처엔 하얀 가면만이 덩그마니 남아있었다.
마지막 장면에선 ‘유령’ 팬텀에 대한 미움보다는 사랑을 양보한 그에게 또 다른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한다. 천상의 목소리 주인공이지만 사고로 일그러진 얼굴에 사랑조차 빼앗긴 그가 너무도 불쌍하기 때문이다. 또한 복수전으로 치닫던 마음을 접고 결국은 더 큰 사랑을 베풀어 그들을 멀리 보내는 장면에서 코끝이 찡했다. 누가 말 했던가,
“사랑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주고 나의 방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진정 원하는 것을 주고 바라지 않는 것.”
이라고 내가 이 공연을 보면서 환상적인 무대 장치, 화려한 의상, 감동적인 러브스토리에서 큰 감동을 받았지만 특히 그 어마어마하고 황홀한 샹들리에, 원근감이 사실로 느껴지든 촛불 잔치, 실제호수보다 더 찬란해보였던 수면 등은 참으로 대단했다. 어떻게 저렇듯 조명을 살려 설치할 수 있었을까 !상상을 초월했다. 그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입장료는 아깝지 않았다고 후배에게 말할 정도였다. 또한 노래와 춤 연기도 너무나 감동적으로 다가왔는데 특히 ‘유령’(브래드 리틀)과 ‘크리스틴’(미니랍) 이 지하 미궁으로 노를 저어가는 신비스런 장면에서 울려 퍼지든 함께 부른 타이틀 곡 ‘오페라의 유령’과 ‘팬텀’(유령)이 부르던 ‘밤의 음악’ (The Music of The Night)과 ‘크리스틴’ 과 ‘라울’의 러브 송 ‘오직 내가 당신에게 바라는 것’ (All I ask of you)을 들 수 있겠는데 그 풍부한 성량, 혼신의 힘을 다한 호소력, 감미롭고 섬세한 음률, 그 어느 것 하나에도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없었다.
끝나고도 몇 번의 커튼콜로 이어졌는데 관객 모두는 기립으로 우뢰 와 같은 함성과 박수를 보냈다. 그 감흥에 젖어 바로 나올 수 없을 정도였다. 충분히 매료 되었기에 이후 얼마 동안 그 멋진 장면, 음악에 도취되어 흥얼거리며 지냈다. 그리고 앞으로도 여건이 주어진다면 나머지 두 작품 (캣츠, 미스사이공)도 꼭 보리라 마음먹는다. 우리가 영화나 뮤지컬 또는 기타 어느 공연을 감상하는 일은 그 작품이 펼쳐지는 과정에서 스토리가 어떻고 잘하고 못하고도 도마 위에 오르긴 하지만, 그 보다 앞서 그 작품에서 받아드린 모든 것에서 내 것 으로 의 소화력에 있는 것이 아닐까, 무엇을 취하고 버리며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심핵이 될 것으로 본다. 그런 중에 상상력이나 진실, 또는 감성이나 사색 등이 순전히 자기 것으로 승화되어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이번 모임을 주선한 동양일보 유 국장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조금 아쉬운 점은 영어를 못 알아들으니 양쪽 옆으로 시설된 스크린의 전광판 자막을 읽어야 했는데 볼 때는 미처 몰랐지만 막상 끝나고 나오니 얼마나 신경 쓰며 보았는지 눈이 많이 아팠다. 또한 같이 간 후배가 시력이 좋지 않아 중간 휴식시간에 망원경을 구입했는데도 별 도움이 안돼 좀 미안했다. 내가 같이 가자고 했는데, 돈만 날린 것은 아닌지. 정말 공연 몇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또한 이미 영국에서 관람했지만, 한가람 미술관의 ‘대영 박물관’ 관람도 유익하고 좋은 시간으로 남는다. ‘람세스 상’ 이나 ‘청년상’ 이스트 섬의 ‘석상’도 꽤 오래 발길을 멈추게 했던 작품들이다. 아무튼 즐겁고 보람 있는 귀한 시간으로 남겨 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