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정 일기

제목 : 2003. 6월 9일. 바다가 보고싶다

목향 2009. 3. 25. 15:02

제목 : 2003. 6월 9일. 바다가 보고싶다.

나는 하루 중 2-3시간을 잔다.
그것도 수면제를 복용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라도 2-3시간은 잘 수 있음에, 그것에도 무척 감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약기운이 떨어져 갈 무렵, 얼마동안 나는 언제나 꿈을 꾼다.
그 꿈은 생생하게 기억에 자리잡는다.
꿈의 내용은 무척 구체적이고
꿈속에서 누군가 내게 전해주는 말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특이한 꿈이다.

그 꿈의 배경에는 언제나 바다가 보인다.
그 바다가 보이는 곳에 내 집이 있다.

꿈에 나타나는 내 집은 언제나 똑같다.
나는 지금도 그림을 그려내라면 집안의 인테리어, 구조, 커튼색깔까지
그려낼 수 있을 정도다.
꿈 속에 나오는 집은 분명 한국이 아니다.
나는 백인 여자친구들과 함께 영어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리고 꿈속의 시대는 현재가 아니다.
아마 짐작컨데, 친구들의 의상이나 주위 배경으로보아
1950-60년대쯤의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고
내 친구들은 나를 '제시카'라고 부른다.
황당한 꿈이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바다를 향해 간다.
바다를 찾아 헤매기도 하고
바다에서 머리를 감고
바다위를 날아다니기도 한다.

그 꿈은 계속해서 반복되고
등장인물들이 달라질 뿐, 장소는 언제나 똑 같다.

꿈에서 깨어나면 언제나 나는 그 생생한 기억에 놀라워한다.

악몽에 시달리며 호흡곤란을 겪을때도 많지만
최근 일련의 꿈들은 바다가 나를 부르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부쩍 바다가 보고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하와이의 바다가 그립고 그립다.
죽음을 생각하고 앉아 있던 내게 매일 '돌아가라'고 말을 걸어왔던 그 바다.
내 처절함과 외로움을 엄마처럼 감싸주었던 그 바다.
그토록 순수한 자연과의 대화를 나누던 곳에서
내가 남자를 만났다는 둥, 불륜을 저질렀다는 둥, 터무니없는 헛소리로 인해
나의 아름다운 바다와 내 마음은 상처받아
더 푸르게 멍이 들었었다.

처음엔 필라델피아라더니, 다음엔 펜실바니아라고 하고
그 다음에는 시애틀에서 남자를 만났다고 하더니
어느새 그 장소가 또 바뀌어 하와이가 되어버렸다.
말을 만들어 내 퍼뜨리는 것은 순식간이지만
그것이 사실이 아니기에 눈 하나 꿈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정신세계와 자연과의 교감. 그리고 영적인 존재와의 소통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함부로 속단하고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게 될 것이다.

나는 하와이에 혼자 머무는 동안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들은 엘리베이터에서도 인사를 나눈다.
그것도 만남이라면 만남이다.
내가 머물던 콘도 위층에 살던 일본인 교수도 만나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의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존 이라는 중국계 미국인 의사 할아버지도 만나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나처럼 장루를 보유하고 있다가 돌아가셨기에
누구보다 내 처지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내게 자신의 콘도를 무료로 빌려준 일본인 가네코 상도 만났다.
버거킹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잠시 만나 대화를 나눴던 일흔의 미국인 할아버지도 있었다.

내게 길을 물어보는 젊은 미국청년들도 만났고
매일 아침 내게 "Good Morning, Miss, Ghil?" 하면서 인사를 건네던
프론트 데스크직원과도 여러번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알라와이운하 근처에서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던 '제인'이라는 여자친구와도
대화를 나눴었다.
그 이후 나는 돌아와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했었다.

세인트 루이스에서 비행기 엔진 결함으로 회항해, 하루를 머물고 떠나야 했을 때,
나를 도와준 백발의 기타리스트 '데이빗'의 친절도 기억한다.
필라델피아에서 산 기타를 손에 들고 있었던 덕분에 데이빗이 내게 말을 걸었고
그 때 TWA 미국 국내선 비행기를 탔었으나, 나처럼 돌아가지 못하고
항공사에서 마련해준 호텔에서 머물러야 했던, 서로 전혀 모르는 승객들이
호텔 라운지에서 내가 산 테일러 기타로, 데이빗이 연주를 했고
같은 처지에 놓인 우리는 국적을 불문하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기타연주에 맞춰 즉흥 파티를 열었던 기억도 생생하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공항까지 데려다주며 '다시 돌아오라고' 레이를 목에 걸어줬던 미국인 의사
'죤'은 아마 지금쯤,,,,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당시 나이도 많았던데다, 혈액암을 앓고 있던 상태였기에 더욱 그랬다.
벌써 6년이나 흘렀으니.....
나는 그에게 내 책을 보내줬고 詩集도 보내줬었다.
그는 한글을 읽을 수는 없지만 고맙다며 편지를 한차례 보내오곤 소식이 끊겼다.

나는 홀로 머물던 하와이에서
우연히 만난 많은 사람들로 부터 과분한 친절과 도움을 받았다.
그것은 모두 바다가, 사람들의 마음을 평화롭게 하고 온순하게 했다고 믿고 있다.

그곳은 예의와 매너를 무척 중요시 하는 나라.
도덕성과 정직함을 높이 평가해 주는 나라

내가 운이 좋았었는지는 몰라도
내가 우연히 알게되었던 사람들은 동양에서온 작은 여자인 나에게 무조건의 친절을 베풀었었다.

그렇게 따지고보면 내가 하와이에서 만난 남자는 꽤 여러명인 셈이다.
그런데 그것이 뭐 어쨌다는 말인가!
그곳에서 사는 동안은 매일 마주쳐야하는 프론트 데스크 직원과 대화를 나눴다고
그것이 불륜이라고 하겠는가?
우습고 우습기 짝이없는 일이다.

내게 있어 하와이는 생명력과 희망을 불어넣어줬던 장소고
너무나도 순수했던 자연과의 대화를 나눴던 아름다운 추억의 장소다.

촬영팀이 이틀동안 다녀갔던 기억만 뺀다면 말이다.
촬영팀이야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들도 속아서 프로그램을 만들었을 뿐,
나는 촬영팀에게 당시 내 심경을 그대로 고백했고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을 이야기 했었다.
그러나 프로그램 방송은 편집되어 내 의도와 상관없이 멋지게 방송되었다.
그 방송에 좋아했을 사람은 단 한사람뿐이었을 것이다.

카메라앞에서 가식적인 눈물연기를 하고,
촬영이 끝나자마자, 남자들끼리만 술마시기로 했다며 나가 돌아오지 않은 어떤 사람.
그날밤, 무슨일을 치르고 있었는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임에도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관심이 없었고, 역겨웠기 때문이다.

법의 심판이 빨리 이루어지길 바란다.

지루하고도 지루한 고소사건.
내게는 '혐의없음' 이라고 적힌 통지서 이외에 벌금100만원을 내라는 통보는 오지 않았다.
많은 언론들의 오보에, 그저 혀를 내두를 뿐이다.  

처음 오늘의 글을 쓰기 시작할때는 없던 분노가 다시 울컥울컥 치밀어 오른다.
잊어야지... 잊어야지.....

.......바다가 보고싶다.
바다에 가면, 바다가 내 상처받은 가슴을 쓸어줄 것 같다.
내 고향은 바다.
그곳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