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정 일기

제목 : 2003. 6월 10일. 밤 꽃

목향 2009. 3. 25. 15:03

제목 : 2003. 6월 10일. 밤 꽃

나의 창 건너로 보이는 자그마한 동산에
밤꽃이 하얗게 피었다.

밤이 되면 더욱 짙어지는 밤꽃 향기.
바람을 타고 내 방안으로까지 번져왔다.

오늘 나는 평소보다 말이 많았다.

나와 함께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피해여성 한분이 바구니에 듬뿍 담아다 준 작은 화분들.
반짝이는 생생한 초록빛으로 작은 이파리를 하나씩 하나씩 키워내는
화초의 신비스러움에
나는 매일 그 화초를 들여다보며 말을 건다.

행복카페식구인 '바다'님이 처음 '록시'로 가져다 준 아주 작은 초미니 허브 화분도
전망 좋은 창가에서 예쁘게 자라고 있다.
나는 그녀들에게도 매일 인사를 한다.
그녀라고 함은,
나와 함께 하는 생명체에겐 여성성을 느끼고 있고

특이할만큼 조용한 미니 요크셔테리어종 "코코샤넬'도 암컷이기에
언니까지 찾아오면,
내 집은 '금남의 집'이다.

나는 이렇게 홀로 사는 것이 참 좋다.
내 굴곡많았던 운명에 감사해야할까보다.

꽃향기는 대부분 향긋한데
왜 그런지 몰라도 밤꽃 향기는 유난히 거슬린다.
그래도 어쩌랴.
그것이 바로 밤꽃이 지닌 고유의 향기인 것을...

깊은 새벽....
어릴 적, 둑길에 지천으로 깔려 피어있던 노란색 꽃을 피우는 '애기똥풀'이 생각난다.
가느다란 줄기를 꺽으면 그 줄기안에서 새어나오던 샛노란 액체.
나는 도화지에 애기똥풀 줄기속의 노란 액체로 그림도 그렸었는데.....
그 시절, 그림에 쓰이기 위해 나로인해 꺾여졌던 애기똥풀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때 그 냄새도, 결코 좋는 것은 아니었지? 아마도......

오늘도 '금남의 집'의 새벽은 고요하게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