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정 일기

제목 : 2003. 7월 5일. 기 도

목향 2009. 3. 31. 17:05

제목 : 2003. 7월 5일. 기 도

나는 언제나 기도를 한다.
남을 위한 기도를 하기도 하고
나를 위한 기도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부자가 되게 해 달라거나
시험에 붙게해 달라거나
살려달라거나하는 기도는 해 본 적이 없다.

언젠가 모 잡지와의 인터뷰 기사에
"암투병으로 죽도록 고통스러울 때에도 '제발 살려만 달라'고 기도해 본 적이 없다
그저 '뜻대로 하십시오' 라고만 기도했다"
라는 내용이 실리자 전화와 편지가 빗발친 적이 있었다.

대부분 종교를 가지신 분들로
"그러면 안된다. 살려달라고 기도해라. 그러면 그 분은 들어주실거다" 라는
걱정의 말씀들이었다.
나는 그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그토록 어렵게 편지를 써 보내주시고
여러번 전화를 걸어주시며 격려를 하며 기도를 해주신 그 일들이
정성과 진심이 없으면 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진 마음의 빚을
어찌 다 갚아야 할지
그저 이렇게 살아가고 있음이 송구스럽기만 할 뿐이다.
예쁜 그림이 새겨져 있는 수납상자에
그때의 편지들을 모두 모아두었고
그 수납상자를 볼 때마다 가슴이 찌릿하게 아파온다.

나는 한번도 본 적이 없지만
나를 알고 계시는 분들.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들.
그리고 행복카페가족들을 위해 날마다 기도를 한다.

그러나 나를 위한 기도는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달라는 기도는 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동안 최선을 다하고
정직하고 올바르게 살겠으니
하느님이 저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한 쓰임새대로 써주십사고 기도한다.

요 근래 거기에 덧붙여진 기도가 있다.
"악에서 구하시고
저를 쓸대로 쓰시되
빨리 데려가 주십시오"  하는 것이다.

나의 기도를 보고 "그러면 안돼요" 하고 안타까워하실 분들의 안위를 위하여
나는 기도하고 있다.
내 마음을 아프게 했던 이들의 삶도 평화롭기를... 기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