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정 일기

제목 : 2003. 7월 17일. 욕하는 사회

목향 2009. 3. 31. 17:08

제목 : 2003. 7월 17일. 욕하는 사회

욕하는 사회.
이 역사는 인류가 생기는 그 시점부터 함께 발전해 온,
인간이 동물보다 열등하고 비굴한 모습을 보이는 사회현상일 것이다.

뒤에서 수근거리고 흉보며 즐거워하는 인간만의 문화는
동 서양을 막론하고 전인류적으로 이어져 온 것이다.

우리사회에서만 보더라도
살아온 동안 단 한 차례도, 뒤에서 자신을 헐뜯는 일에 상처를 받지 않고
살아온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유치원에서, 학교에서, 동네에서, 직장에서, 온 마음을 다주고 속내를 털어놓고
지내던 친구사이에서까지.
'세 사람만 모이면 그 중의 한 사람은 헐뜯음의 대상이 된다'고 한다.

어릴적엔 다른 아이들보다 뒤쳐지는 아이에게 비난을 쏟아내지만
성인이 되면서는 그 양태가 달라진다는 것이 재미있는 일이다.
성인이 되고부터는 자신보다 잘 나가는 사람에 대해 뒤에서 이유없는 욕을 해댄다는 것이다.
그리고 뒤에서 공연히 남을 비방하는 일을 즐기는 사람의 대부분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하거나 열등감이 깊숙히 자리해있는 사람들이다.
때론 그런 사람들중에서도 누군가 자신에 대한 터무니없는 얘기를 했다더라는
말만 들으면 이성을 잃고, 누가 처음 그런 말을 했는지를 찾기위해 혈안이 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막상 찾아냈다해도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네가 나 흉보고 이런말하고 다녔다며?" 라고 따진다해도
상대가 쉽사리 인정할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어머머? 누가 그래? 난 그런말 한 적 없어!" 하며 오히려 따지러 온 사람을 향해
크게 저항하기 때문에 기분은 더욱 불쾌해지고 그 두사람 사이의 벽은 더욱 단단해져 갈 것이다.

뒤에서 욕하는 사회.
이 사회의 문화는 오랜 역사를 두고 변함없이 이어져왔지만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급속히 보급되면서부터는 이 욕하는 문화가 사회전반에
커다란 영향력을 갖게 된 것이다.
말이란 귀에 흘러 들었다 자취없이 사라지지만
글로 쓰여진 비방은 증거로 남아있고
그로인해 그 파장의 범위가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에게까지 넓혀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터넷을 통한 비방과 모욕, 명예훼손은
다른 매체를 통한 그것보다 처벌의 수위가 훨씬 높은 것이 현행 법이다.

80년대 휴교령 속에서 학교를 다녔던 내 경우에는
보통사람인 한 개인에 대한 비방을 하느라 보낼 시간도 없었을 뿐더러
정의와 의리, 원칙과 진실을 찾고 지키기 위해 나 자신을 갈고 닦았으며
나의 행동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곧 나의 부모 형제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며
나의 동료 나의 고향 자연에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생각했다.
그래서 언제나 어떤 선택, 어떤 행동을 해야할 때마다
부모님과 가족들 얼굴에 먹칠을 하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하며
이성적 판단을 하고 절제하고 인내하며 살아왔다.

방송인으로서의 내 삶은 맑은 날의 항해처럼 순조로왔지만
개인적인 나의 삶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거의 남에게 이용당하고 피해를 입었지만
개인적 감정으로는 후회가 없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게는 꿈이 있었다.
점점 피폐해져가는 어린아이들의 정서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맑은, 진짜 악기가 연주하는 반주에 맞춰 부른 동요음반을 꼭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이미 유럽이나 미국쪽에서는 활성화되어있는 문화인 '오디오 북'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 음반을 제작하는 일은 수익성을 배제한 문화활동일 뿐이다.
그러나 그 꿈은 잠시 접어둬야 했다. 방송도 그만둬야 했다.
욕하는 사회의 인터넷 비방때문이었다.

얼굴과 이름, 직업과 나이, 성별까지 위장한 채 숨어서 허위 비방, 인신공격의 글을
기관포처럼 난사하는 일에 중독되어 양심까지 마비된 사람들.
욕하는 사회와 인터넷의 익명성이 합작으로 만들어 낸 또 다른 사회악이다.

오늘은 제헌절이었다.
처음, 기본적 규범과 법령이 마련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급속히 확산된 인터넷 안티문화에 대한
법적 규정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관이나 단체가 아닌, '개인'에 대한 안티란 개설을 불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온통 욕설과 허위사실 유포 비방과 인신공격만을 하는 안티모임들이 왜 존재하는가.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참 재미있는 일이다.
길은정안티라니......
내가 그렇게도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던가?
나는 스타들 한테만 안티가 생기는 줄 알았었다. 우습다.

가면을 쓰고 뒤에서 욕하는 사회는 시치미를 떼고
오늘도 아무 일 없는 듯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