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정 일기

제목 : 2003. 7월 19일. 침 전

목향 2009. 3. 31. 17:09

제목 : 2003. 7월 19일. 침 전

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러다 말하는 것을 잊는게 아닌가 모르겠다.

툭하면 응급실로 실려가지만
그렇다해서 뾰족하게 치료방법이 있는 것도 아닌 날들.

나는 요즘 폐인이 되어가는 것 같다.

노래도 할 수 없고
방송도 하지 못하고
깊은 생각에 빠지는 것조차 두려워하며
책만 손에 들고 있지만
내용이 쉽게 눈에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누워있는 시간과
말을 잊은 시간이 더 많은 날들.
오늘은 내 감정의 찌꺼기가 가라앉는
침전을 용서하기로 했다.

오래된 친구가 말했었다.
"넌 참 강해"
"그런가봐. 내가 그리 강해보여서 자꾸만 나를 부러뜨리려 하나봐"
하고 내가 말했었다.

오늘 나는 폐인에 가까웠다.
밤이 깊어 잠들면 모든 고통을 잠깐이나마 잊을 수 있으니
날이 어두워 지는 것이 반가웠다.

내일 새로운 아침이 밝아온다는 것이 두려운 마음이었다.

.........

그럼에도
옳은 일이 무엇이고
그른 일이 무엇인지 판단할 능력은 아직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해야할 일과 해서는 안되는 일을 구분할 판단력이 아직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내일은 다짐하고 새로운 날을 향해 분연히 일어나리라 믿으며
오늘의 폐인 생활.
침묵과
감정의 침전을 용서하기로 했다.

한 걸음을 내딛기위한 숙고가 필요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