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정 일기

제목 : 2003. 11월 26일. 어이없는 아픈기억

목향 2009. 4. 5. 15:03

제목 : 2003. 11월 26일. 어이없는 아픈기억

시골집들은 늘 문을 열어놓고 살았다.
내가 어린시절을 보내던 때도 그랬기에
누구나 동네사람들은 허물없이 드나들었고
저녁이면 인기드라마 '여로'를 보기위해
동네사람들이 우리집 안방을 차지하고
안방은 말이 안방이지, 동네분들의 사랑방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옆집과는 담장에 문을 달아, 대문을 나서지 않고도
집안끼리 드나들며 특별식이 있으면 서로 나누어 먹는 것이 일상이었다.

내 방은 뒷뜰을 돌아 작은 화단 앞에 있었는데
나는 매일, 내 방문앞 작은 화단에
아버지랑 같이 심은 채송화랑 작약 봉숭아, 나팔꽃 맨드라미가
피고지는 걸 내다보며 하루도 빼놓지않고 기타를 쳤었다.

그렇게 조용하던 중학교 3학년 어느 날 부턴가
묘한 편지가 내게 배달되기 시작했다.
누가 보낸 것인지 발신자의 이름과 주소도 적히지 않은 편지였다.

유명한 시를 인용하기도하고 은유적으로 최대한 멋을 부린 그 편지는
소위 말하는 '러브레터' 였던 것이다.
계속해서 편지가 왔지만 보내는 이가 누구인지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편지에 이런 글이 쓰여있었다.

"자기를 보고 웃음을 지어준다면, 내가 자기의 마음을 받아들인 것으로 알겠다"
는 것이었다.
편지의 주인공이 누군지를 모르는데......
사건은 점점 미궁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는 떡을 만들었다며 옆집에 가져다 드리라고 내게 심부름을 시키셨다.
우리집 옆집에는 같은 학년 친구와 고등학생인 그아이 형(장남)이 살았는데
가족같이 지내던 이웃이었다.

엄마가 건네 준 떡 접시를 쟁반에 받쳐들고, 담장사이로 난 우리들만의 문을통해
옆집으로 갔는데, 마침 옆집 아주머니와 큰아들이 대청마루에
나와 앉아계셨다.
떡을 전해드리고 웃으며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에도 몇 번 발신자 불명의 편지가 도착했지만 나는
그에 대해서는 잊고 있었다.

며칠이 지난후, 우리집 포도나무에 탐스러운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열렸었다.
역시 엄마 심부름으로 이댁 저댁 포도송이를 담은 소쿠리를 돌리는 중이었다.
우리집에서 가까이 사시는 고모댁에 포도를 전하고 돌아나오는 때는
어스름 저녁이 땅거미로 내려앉고 있었다.

아무 생각없이 집으로 돌아가던 나는 우연히 골목에서
옆집 큰아들과 마주치게되었다.
나는 "어머? 안녕하세요?" 라고 밝은 소리로 인사를 했다.

그런데... 나의 반가운 인사에 되돌아온 것은 세차게 때린 뺨따귀였다.
머리위로 별이 반짝이는 듯했고,
우선은 내가 왜 뺨을 맞아야 했는지 영문을 몰라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었다.
난 그가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시작하자 그제서야 내막을 알게되었다.

"너, 나 보고 웃었잖아! 난 얼마나 행복했는지 알아?
넌 내 맘을 받아들였잖아! 그런데 왜 답을 안하는거야 도대체!
넌 내 자존심을 깡그리 뭉개버렸어! 네가 날 보고 웃은 건 도대체 뭐였는데!"

그는 그렇게 혼자 마구 소리를 치더니 뒤를 돌아 마구 뛰어 골목을 꺽어지며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난 아직도 얼얼한 뺨을 어루만지며 황당하게 벌어진 일에대한
상황을 파악하느라 제 자리에 한참이나 서있어야했다.
그때의 나로서는 금방 이해하고 추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황당하게 뺨 한대를 맞은 후, 충격은 컸다.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내가 언제 웃었단 말인가....
나와 그가 연결된 어떤 일도 찾아낼 수가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리고 그 억울함은 가슴에서 남아 소용돌이를 쳤다.

중3시절이라 춘천여고 입학시험을 준비하느라 수업은 늘 늦게 끝났고
나는 묘했던 편지와 따귀 사건을 잊어가던 즈음,
또 다시 발신자 불명의 편지가 도착한 것이었다.
편지내용중, " 나는 늘 너의 기타소리를 듣는다. " 라는 문장이 있었다.

나는 아하!
그제서야 그 모든 사건의 기승전결이 어떻게 펼쳐진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옆집에 살던 고등학생, 내 동창의 형은 나를 짝사랑하며
편지를 보내왔던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부탁했던 나의 답을 기다렸던 것이다.

그러던 중, 떡 접시를 가져다주던 날, 난 아무 생각없이
웃으며 인사를 나눴던 것을, 그는 그 웃음이 그가 간절히 원하던
나의 대답이었다고 크게 오해를 했던 것이었다.

'나는 매일 너의 기타소리를 듣는다" 라는 문장에서 확연하게 알 수 있었다.
나의 기타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은 바로 옆집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추리 이벤트를 펼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정체는 철저히 감춘 채, 짝사랑을 해오다가,
이웃이라 웃으며 인사를 건넨 것이, 그에게 있어서만은 더이상
짝사랑이 아닌게 되어버린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그 혼자만의 착각이었지만말이다
그에게는 그것이 무척 아픈 상처로 남았을 것이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나는 옆집에 심부름 가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 웃음이 어떤 의미였었는지 해명할 기회도 갖지 못했다.

그리고 춘천여고에 진학해 고향을 떠났다.
이어서 서울에 올라와 학교를 다닐 즈음, 방학을 맞아 집에 돌아갔을 때,
나는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방학을 맞기 한달전 쯤,
그가, 화천의 꺼먹다리에서 목을 매어 자살을 하고 말았다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물론 그사이 세월이 흘러,그가 자살을 선택했던 이유가
나때문은 아니었지만,
그의 감성이 얼마나 풍부했으며 얼마나 많은 고뇌를 해왔던 것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공부를 아주 잘하던 모범생이었는데, 그의 자살은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
가끔 그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사람들은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판단아래,
얼마나 많은 오해를 하며 살고있는가 하는 것을 생각했다.

어떤이는 방송화면에서 내가 자신을 보고 웃었다며
내가 자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결혼을 하자고 쫓아다녔던
스토커도 있었다.
그렇게 어이없는 황당한 일을 참으로 여러차례 겪었다.

자기중심적인 편협한 사고는 자칫 무심한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

누군가 그랬었다.
'짝사랑은 추억이지만, 외사랑은 범죄라고......

오늘도 어이없는 사람때문에 안타까웠던 날,
창밖에 비는 내리고......
어렸던 시절, 어이없고 황당했으면서도 아팠던 기억을 떠올려본다.

남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집착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