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정 일기

제목 : 2003. 12월 1일. 숲

목향 2009. 4. 5. 15:05

제목 : 2003. 12월 1일. 숲

나무가 서있다.
한 그루의 나무를 숲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숲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여러 종류의 식물이 살아간다.
그들은 상생하기도 하고
서로 상극이 되기도 한다.

그 숲에 찾아오는 이들의 취향은 각각 다르다.
큰 나무를 좋아하는 이가 있는가하면
이끼를 좋아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름모를 잡초 역시 숲에서는 제 몫을 하고 있다.
큰 나무만으로 숲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인간관계를 생각해보았다.

어떤 사람은 자기보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가만 두고 보질 못하고 칭찬하지 않으며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하지 않기위해
헐뜯고 잘라내기 위한 노력을 하느라, 자칫 자신의
맡은 바 일에는 소홀한 경우도 있다.
그리하여 그를 나무처럼 베어내는 일에 성공했다하면
그 자리를 메울 이를 소개할때는
절대로 자기보다 능력이 뛰어난 이는 소개하지 않게 되어있다.
그렇게 해야지만 자신이 돋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자신이 드디어 가장 큰 나무가 되었다해도
스스로 성장을 멈춘다면
곧 다른 나무가 빠르게 자라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말 것이다.
그래서 또 자신의 영역과 위엄에 위협을 느껴
베어내고 또 베어내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그의 주위에는 잡초만이 가득할테고
나무 한그루 서있는 잡초밭은 이미 숲을 이루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무성한 숲을 좋아하던 사람들은
잡초밭이 되어버린 황량한 벌판의
나무 한그루를 더 이상 찾지 않게 될 것이다.

뒤늦은 후회로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아무 것도 없고,
다시 무성한 숲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잘라낸 시기보다 몇 백배의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할 것이다.

그런 진리를 알기에 우리는 희생도하고 양보도하면서
상생하는 것인데
한 치 앞의 욕심에 눈 멀어, 이간질을 시키고
남의 자리를 빼앗고 자신의 세력을 넓혀
좀 더 안정적인 자리를 확보하려하다가는 결국은
낭패를 보기가 십상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능력을 갈고 닦는 일보다
자신의 자리를 위협한다고 느끼는 이를 제거하기 위한
일에 더 많은 시간과 노동력을 투자하는 사람을
가까운 곳에서 보고있었다.

나의 인생과는 전혀 상관없고
내가 개입할 일도 아니며
그저 같은 울타리안에서 일을 하며 어쩌다 잠깐씩 마주칠 정도의
인연이지만
그런 삶의 방식을 선택한 사람의 모습에서
아슬아슬한 안타까움을 느꼈다.

자연은 끝없이 말을 한다.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숲이 아름다운 이유는
각각의 종류와 특징을 가진 식물들이
제 있어야 할 자리에서
새 잎을 피우고, 떨구고 자양분이 되며
상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숲을 좋아하며
각종 휴양림들을 찾는다.

바로 우리가 숲 처럼 살아야 할텐데
우리가 바로 숲인데.....
사람들은 숲을 찾아 헤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