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정 일기

제목 : 2003. 12월 3일. 와이키키 브라더스

목향 2009. 4. 12. 14:24
제목 : 2003. 12월 3일. 와이키키 브라더스

벌써 1년이 훌쩍 넘어버렸다.
태풍'루사'로 인한 내 고향 강원도의 수해가 엄청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기획해 열었던 수재민돕기 콘써트
'길은정과 친구들'.........

2002년 10월10일. 정동 류관순기념관에서의 콘써트를 위해
보석처럼 찾아 낸 그룹 '와이키키 브라더스'
음악을 너무나도사랑하고
음악을 하기위해 막노동을 해서 비용을 벌고
음악을 하지 않으면 죽었을 것 같다는
철저한 언더그라운드 롹밴드 '와이키키 브라더스'

세상에 알려진대로
그들의 이야기는 영화로 만들어진 적이 있다.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스토리 모델이었던 그룹이
바로 지금의 '와이키키 브라더스'다.

물론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들은 실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음악을 다룬 영화의 맛을 제대로 살리지도 못했고
연주하는 모습등은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그것은 한국영화계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을 탓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감독이 영화의 소재로 삼을만큼 구구절절한 사연들과
언더그라운드 음악인들의 향기를 품고다니는 구룹이 바로
'와이키키 브라더스'였다.

'와이키키브라더스'를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은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말이 통할 것 같은
동질감이었다.
나는 지난 가을, 예상치 못했던 인터넷 일기유출 파문으로 인해
토네이도의 소용돌이 속에 빨려 들어가 있는 듯
거의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지경이었다.
하루가 지날수록 체중이 빠져나가고
광대뼈만 튀어나온 비참한 몰골을 하고도
중심을 잃지않고 정신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수재민돕기 콘써트를 약속했던대로 열어야 한다는 의지와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자투리 시간을 쪼개
끼니를 걸러가면서도 연습을 하며 음악을 하는 동안의 행복함,
충만함, 기쁨 덕분이었다.
그들과 함께 연주하고 노래하는 동안만큼은
세상사 온갖 시름, 걱정,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고통스러울수록 더욱 더 많은 일을 계획했다.
4인조로구성된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악기 단 4가지.
그리고 나의 목소리.
이렇게 단순한 사운드로
폭풍처럼 빠르게 몰아쳐 변해가는 디지털 시대에 살며
아날로그 방식을 고집해, 70년대에서 80년대 초반까지 사용됐던
2 Track 녹음 방식에 가능한 가깝도록 녹음을 했다.
소위 말하는, '찍어가기' '고치기' '편집' 없이
연주도 한번에, 노래도 단 한번에 완창을 하는 방법을 고집했다.
디지털화된 기교는 어떠한 것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게 단순하지만 고집스러운 작업을 하느라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동안
나와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연습실과 녹음실을 오가며 살았다.
돈은 밑빠진 독에 물 부어대듯 들어갔다.
그렇게 '길은정과 와이키키 브라더스' 음반의 녹음을 마쳤다.

믹싱과 매스터링 단계를 거치는 와중에 작업은 중단되었다.
나를 둘러싼 하나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라
음반작업을 더 이상은 할 수 없었고
언젠가......
그 때, 때가 오면 우리가 추구하던 음악을 발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그, '때'를 기다리기로 했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아주 힘겹게 살아가면서도
음악을 놓지 않았다.
절망속에서도 음악을 붙잡고 영혼을 맡기고 있었다.

그런 언더그라운드 음악밴드의 연주를 감상한 출판사 관계자에 의해
와이키키 브라더스 그들의 삶과 음악이야기는
영화에 이어, 이번엔 책으로 쓰여지게 되었다.

나는 어제
'와이키키 브라더스' 라는 제목으로 출판 된 책과
그 책에 부록으로 달린 그들의 연주 CD를 전해 받았다.

연주CD를 듣자니 지난 시간 함께 연습하던 기억들이
음악처럼 흘렀다.
사무치게 그리운 시간들이었다.
최 기타의 연주는 울컹하는 그리움을 만들어냈다.
인기와 부와 명예를 동시에 가져다 줄 지름길인
'들국화'에서 스스로 빠져나와 언더그라운드를 택한 기타리스트.
30년이상 기타만을 쳐 온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로서의
삶의 애환이 기타 줄에 배어 울려나오고 있었다.
내가 지금부터 30년동안 기타만 친다해도 도저히 따를 수 없고
흉내도 낼 수 없는 영혼의 울림이 있었다.

이제는 책을 집어 들었다.
그들은 돈을 벌기위해 음악을 하지 않는다.
음악을 하기위해, 최소한의 돈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음악을 하며 행복해한다.
진정한 언더그라운드의 정신이라고 생각했다.

인기와 명성과 부와, 호화로운 생활따위와 타협하거나
교환하지않고
자신들이 사랑으로 연주하는 그 순간을 행복해하는 음악인.

돈을 많이 버는 것을 성공의 잣대로 삼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지만
나는 그 잣대도 바뀌어야하며
잣대의 종류도 달라지고 다양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빈센트 반 고흐는 지독하게 가난했고
고독했으며 이웃들 조차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었지만
그는 결국 세계적이며 시공을 초월하는 예술가로 남았다.

나는 '와이키키 브라더스' 야말로  성공한 그룹이라고 생각했다.
평범했다면,
다른 이들처럼 부와 인기 명성을 쫓았다면.....
그런 욕심으로, 음악을 삶의 수단으로 삼았다면...

어느 누가 그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어하고
어느 누가 책으로 출판하고 싶어하겠는가......

이제 나는 책을 손에 들고
그들과 꼭 만들기로 약속했던 맑은 어쿠스틱 악기로 연주하는
'동요음반'에 대한 꿈을 꾸기로 했다.

언젠가......
때가 되면.......
그 적당한 때는 반드시 올 것을 믿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