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정 일기

제목 : 2004. 3월 31일. 몰디브의 추억

목향 2009. 4. 25. 14:05

제목 : 2004. 3월 31일. 몰디브의 추억

독일 월드컵 국가대표 축구 예선전이 몰디브에서 열렸단다.
인도와 스리랑카 아래로 삼각 꼭지점에 위치한 적도부근 인도양에 위치한 나라.
약 2000개의 작은 섬들로 국토가 이루어져 몰디브 제도로 표기되는 나라.
해수면에서 육지의 최고높이가 1미터 정도밖에 안되어
지구 이상기온 온난화로 빙산이 녹아내려 해수면이 차츰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비극적 최후를 맞고 바다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는 전설속의 '아틀랜티스' 처럼 몇십년 후에는 바다속으로 가라앉아 버릴 것이라고 예고되는 나라.
그리하여 빨리 가봐야 한다며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는 나라.
몰디브에 갔던 것이 벌써 10여년이 지난 과거의 일이다.

작은 섬들로 구성된 몰디브로 가는 일은 당시 항공편도 불편했고 싱가포르에서
대기시간도 길고 비행기를 갈아타고도 6시간여를 비행해야 했기 때문에
무척이나 피곤한 일정이었다.
방송 촬영때문에 떠났던 우리 일행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국제공항이라고
믿기에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50년정도 과거로 되돌아간 듯 착각할 정도의
낙후된 시설과 마주쳐야 했다.
조그만 선착장 같은 국제공항 천정에서는 선풍기가 돌고 있었고
바닥엔 군데 군데 팬 흔적을 나무 판자로 가리고 있었다.

신 국제공항 건설 계획에 따른 지출로, 몰디브 국가 경제가 휘청일 정도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공항섬에서 발을 떼어 놓으며 조그만 모터보트에 올랐다.
촬영팀이 묵기로 한 호텔 섬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섬 하나에 호텔 하나만 달랑 있는 호텔 섬은 화려하고 안락하기 그지없었다.
그대로 그곳에서 주저앉아 머물러버리고 싶을 만큼 매혹적이었다.

그러나 우리 일행들은 촬영을 목적으로 했기에 한가하게
자연을 즐기거나 해양스포츠를 즐기고 관광을 할 처지는 아니었다.
새벽부터 강행군으로 이어질 촬영스케쥴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빡빡한 스케쥴로 더 많은 자료를 확보해야 하기에 쉴 새없이
몰디브 제도 이 섬 저 섬을 돌아다니며 촬영을 계속했었다.
이슬람국가라 하루에 5회씩 손발을 씻고 기도를 올리는 그 나라에서는
기도시간마다 상점문을 닫기때문에 음료 하나를 구입하기도 쉽지 않았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서울에 속하는 수도 섬인 '말레'에서는 길거리에서
마약류에 속하는 나뭇잎으로 싼 무엇인가를 당당하게 팔고 있었고
그 약초에 취한 대부분의 남자들은 눈동자는 충혈되고 혀는 시커멓게 착색되고
치아또한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로 부두가에 앉아
이방인인 우리일행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걸어서 지척에 있는 대통령 궁이며 국립박물관이며 국립묘지. 시장과 사원등을
촬영했고 쓰레기 섬. 학교 섬. 기념품 판매점 섬.등을 모터보트를 타고 이동해
돌아보았다.
밤에는 배를 타고 바다낚시 장면을 찍기위해 날을 샜다.
낮에는 바다 속 장면을 촬영하기위해 스쿠바 다이빙을 배우고
깊은 바다 속으로 들어 가 물고기를 만져보기도 하고
인어가 된 기분을 느껴 보기도 했다.

원주민들이 사는 섬에 도착해 그들의 삶에 좀 더 가까이 접근해보니
우리로서는 '뜨악'할 정도의 낙후한 생활시설들이 눈에 보였다.
집안에 텔레비젼도 있고 마당엔 해먹도 걸려있는, 그나마 부유층이라는 가정의
부엌에 들어갔을 땐, 위생이라는 단어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곳이라고 느껴졌다.
그 부엌에서
방금 전 나무에서 떨어진 열매를 주워 흙을 옷에 쓱쓱 씻었던 손으로
주물럭 주물럭 빈대떡 같은 것을 만들어 내, 먹으라며 집 주인은
내게 손으로 그 음식을 건네주었다.
손님에 대한 예의로 만들어주는 그 음식을 나는 아주 맛있다는 듯
표현을 하며 다 먹었었다. (촬영 스탭들은 먹지 못했다)
그들은 내가 맛있게(?) 먹는 모습에 기뻐했고 나는 그 후로 속 앓이를 하느라
고생해야 했다.
짙은 카레로 범벅을 한 정체 모를 그 음식의 향신료는..... 내게는....지독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지저분하고 비위생적인 부엌에서
흙을 만지던 손으로 빚어내 건네 준 그들의 음식이 그리워진다.
그들이 낯선 이방인이며 처음 보는 한국인인 나에게
최선을 다해 만들어 준 친절로 양념한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식당에서 상추에 묻은 벌레를 발견한다거나
제대로 닦이지 않은 컵. 숟가락에 묻은 고추가루를 발견해도
몰디브에서의 그 때를 생각하면 우습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 때 그 음식도 다 먹었는데 뭐....
그렇게 먹으면서도 잘 살던데 뭐..... 이쯤이야 하고 말이다.

젊은 청년이나 아이들은 놀이라고는 축구밖에 모르던
원주민 섬에서 아이들과 술래잡기도 하고
풍어를 기원하는 전통의식도 보고
촬영을 마치고 호텔섬으로 가기위해 배에 오를 때,
"우린 친구죠?  우린 친구죠?" 라고 몇 번이나 되 묻고
눈에서 멀어질 때까지 손을 흔들고 서있던 그들과
배에서 손을 흔들며 아쉬워하던 우리들.
그것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그 곳에도 조금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겠다.
한국 관광객들이 꽤 늘었으니 말이다.

몰디브에서 열린 국가대표 축구선수들의 시합이
무승부로 아쉽게 끝났다는 소식과 함께
더 있지 못한 아쉬움으로 남아있는 몰디브에서의 내 추억을 꺼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