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정 일기

제목 : 2004. 4월 4일. 여고시절 급훈

목향 2009. 4. 25. 14:06

제목 : 2004. 4월 4일. 여고시절 급훈

내가 주말공연을 하고 있는 미사리의 라이브 클럽 '록시'에
반가운 동창생이 찾아왔다.

"저.... 싸인 좀....."
몹시 수줍어하며 싸인받을 종이를 내밀던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 혹시.. 나... 기억하겠니?  박근수선생님반... **정이...."

그녀의 얼굴을 보니 여고시절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당시 학교에서 그녀를 모르는 학생들이 없을 만큼 예쁜 그녀였다.

"야, 그럼 알구 말구... 정말 오랜만이다...근데 우리사이에 싸인은 무슨....."

결국 싸인을 받으려했던 종이에는 전화번호가 대신 적혔다.

"건강은 어떻니?...... 너 여고때도 많이 아팠었지? 난 그 기억이 나....."

그랬다. 여고시절동안도 나는 자주 쓰러지고 허약했던 기억이 났다.
말 수도 적었으며 친구들과 어울려 재잘대는 일도 거의 없었다.
운동장에 나가 놀지도 않았고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집에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했었다.
그래서 학교동창들은 내가 기타를 친다거나 노래를 한다는 사실도 잘 몰랐다.

공연을 마치고 친구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여고시절 눈에 띄지않게 장난스러웠던 내 모습을 기억해 냈다.

신학기가 되어 급훈을 정하는 시간.
당시 '성실. 근면. 순결....'등등의 뻔한 급훈이 교실 정면에 걸려있을 때
나는 급훈을 '박근수'로 하자는 제안을 했고
반 아이들은 어안이 벙벙한 듯 했다.
"넓을 박, 부지런할 근. 닦을 수. 폭넓게 부지런히 학문을 닦자 라는 의민데 어때?"
한자풀이로 의미를 설명하자 우리반 급훈은 만장일치로 순식간에 정해졌다.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선생님을 기다렸다가 정한 급훈을
대표로 반장이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말도 안된다며 펄펄 뛰시고 반대하셨다.
그런 급훈은 있을 수 없다는 말씀이셨다.
반에서 적극적이던 아이들은 한문선생님께 찾아가
'박근수'라는 단어가 한자로 만들어질 수 있는지 자문을 구했고
"안된다"는 선생님께, "왜 안된다는 말입니까? 한문선생님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고 우겨 결국 우리 반 급훈은 1년 내내 '박근수'로 새겨져
교실 정면에 걸려있었다.
담임선생님의 성함을 딴 급훈은 최초로 발생한 일이라
교무실에서는 상당한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재밌다는 반응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단 한 분, 박근수 선생님만은 그리 탐탁치 않게 생각하셨다.
물론 그 속내는 모르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오늘 만난 동창으로부터 박근수선생님이 이미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병명은 '암'이었다고 했다.
보수적이고 무척 엄하셨으며 수업진행도 지루해서
학생들 사이에 그다지 인기는 많지 않았던 선생님이셨다.
야간자율학습 시간동안 다른 선생님들과는 달리
단 1초도 자리를 뜨지 않으시고 교탁에 앉아 책을 읽으며
우리를 감시하고 야단치시던 선생님이셨다.
타협도 없으셨고 정도를 걷도록 몸으로 보여주신 분이었다.
그래서 다른 반 아이들은 더러 하기도하는 소위 '땡땡이' 라는 것은
우리반 박근수선생님의 야간자율학습 감시하에서는 꿈도 못꿔볼 일이었다.
나는 그런 선생님의 고집스러움과 융통성 없는 면을,
'조침문'을 개작해 지적하는 글을 쓰기도 했었다.

내가 노트에 써놓은 그 글을 다른 친구가 재밌다며 베껴 써,
선생님의 교탁에 올려놓은 것이 화근이 되어 기합을 받은 적도 있었다.

어릴때는 몰랐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로서는 정말로 훌륭하신 선생님을 담임으로 맞은
행운아들이었던 것이다.
누군들 쉬고 싶지 않았을까? 선생님도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단 하루도 빠짐없이,
밤 9시까지 이어진 야간자율학습시간에 교실을 지키며
반 아이들이 딴 길로 새거나 빠지지 않도록 엄하게 지켜주신 것은
웬만한 사명감없이는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런 선생님의 고지식함을 닮아,
지금의 나도 이리 보수적이며 고지식한지 모르겠다.

'넓을 박, 부지런 할 근, 닦을 수'
선생님의 성함과는 한자가 달랐지만
어쩌면 그 급훈을 선생님은 평생 잊지 못하셨을 것도 같다.
암으로 벌써 세상을 떠나신 뒤에도
제자들은 그 급훈을 잊지 못하고 다른 과목선생님의 성함은 다 기억하지 못해도
박근수선생님만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이토록 잊지 못하고 기억한다는 것을
저 세상에 계시는 선생님도
예의 그 근엄한 표정을 지으시며 내려다보셨음 좋겠다.